2석 우파 개혁당이 1454석 1위… 英 지방선거 '노동·보수 양당제' 붕괴
'미니정당' 개혁당, 지방선거 대승
7일 영국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에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고 민족주의를 표방해온 강경 우파 정당 영국개혁당(Reform UK·이하 개혁당)이 기록적인 대승을 거뒀다. 개혁당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론을 주도해 온 대중영합주의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62)가 이끄는 정당이다. 의회(하원) 의석수가 8석인 미니 정당이지만, 최근 경제난과 반이민 정서 속에 당 지지율이 양대 정당 보수당·노동당을 압도할 정도로 치솟으며, 영국 정치권을 흔들어왔다.
이번 선거에서도 개혁당의 승리가 예상됐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압승을 기록하면서 “영국에서 양당제 시대가 끝나고 다당제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2024년 7월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키어 스타머 총리의 노동당 정권은 이번 참패로 거센 퇴진 압력을 받게 됐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세 선거 중 가장 주목받은 잉글랜드 지방의회 선거에서는 개혁당 돌풍에 노동당과 보수당 후보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이번 선거는 런던 32개 자치구와 맨체스터, 버밍엄 등 대도시 의회 등을 포함해 총 136개 의회, 5066석을 새로 뽑는 선거로 한국으로 치면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선거에 해당한다. 이전까지 지방의회 의석이 2석이었던 개혁당은 1452석을 더 얻어 1454석을 확보했다. 개혁당이 과반을 차지한 지방의회도 14곳이 됐다.
노동당은 기존 2564석에서 절반이 훨씬 넘는 1496석을 잃고 1068석으로 내려앉았다. 노동당이 장악하던 지방 의회도 68곳에서 28곳으로 줄었다. 보수당도 기존 1364석에서 563석을 잃으며 801석만 살아남았다. 양당이 빼앗긴 의석수는 개혁당뿐 아니라 다른 소수 정당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유서 깊은 중도 좌파 자유민주당이 152석을 추가 확보해 844석을 확보했고, 친환경 정책에 집중하는 녹색당도 440석을 추가해 586석을 차지했다. 스카이뉴스는 “단순한 항의 투표를 넘어, 기성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전면적인 거부권 행사”라고 했다.
스코틀랜드·웨일스 의회 선거에서도 개혁당은 돌풍을 일으켰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와의 차별화를 꾀하는 지역 정당들이 의회를 주도하고 노동·보수당이 뒤쫓는 흐름을 보였는데, 원외 정당이었던 개혁당이 지역 정당까지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개혁당은 스코틀랜드에서 17석으로 노동당과 함께 공동 2당이 됐고, 웨일스에서는 34석으로 단독 2당이 됐다.
거대 양당 중에서도 집권 노동당의 참패가 주목받고 있다. 서민과 노동자의 정당을 표방해 온 노동당 지지세가 견고해 당의 색깔을 따 ‘레드 월(붉은 장벽)’이라고 불리던 텃밭에서 줄줄이 참패했기 때문이다. 선덜랜드에서 노동당은 기존 49석에서 5석만을 사수해 거의 소멸 직전으로 내몰렸고, 개혁당은 0석에서 58석으로 급부상했다. 인근의 게이츠헤드와 사우스 타인사이드 등에서도 개혁당이 과반을 차지하며 노동당 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켰다.
레드 월은 노동자가 밀집한 잉글랜드 중부와 북부 지역으로, 영국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곳이다. 미국으로 치면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에 해당하는 곳이다. 결국 노동자·서민층의 핵심 현안인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집권 노동당이 해결에 실패하면서 표심이 이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노동당의 경제 정책은 서민 생활고 해결과 괴리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키어 스타머 정권이 적극 추진한 탄소세 정책으로 전기·가스 요금이 대폭 상승했고, 동시에 물가는 매년 5~10%씩 상승했다. 이민자 유입으로 노동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일자리 경쟁 등이 더 치열해지면서 표심을 잃은 것도 패배의 요인으로 꼽힌다. 스카이뉴스는 “스타머의 노동당이 너무 ‘런던 중심의 중산층 정당’처럼 변했다”, “노동당도 결국 우리 편이 아니다” 등의 유권자 발언을 전했다.
보수당도 의석수 기준으로 4당 수준으로 추락했다. 야당으로 내려앉은 뒤 당내 내분이 이어지면서 ‘차기 권력’으로서의 존재감이 사라졌고,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정치권 엘리트들을 심판하자”, “이민자 수 제로(0)”, “영국인 우선(British First)” 등의 간결한 구호를 앞세운 개혁당에 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집권 노동당은 물가 상승이나 안정적인 리더십 면에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보수당은 브렉시트 이후 반이민 등 핵심 현안을 개혁당에 빼앗긴 상황”이라며 “전통적인 양당제에 대한 큰 실망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했다.
대승을 일궈낸 개혁당 대표 패라지는 단숨에 총리 후보로까지 급부상했다는 평가다. 그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탈퇴 캠페인을 이끌며 존재감을 알렸지만, 양당 체제가 자리 잡은 영국 정치권에서 ‘이단아’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브렉시트 투표 후 8년이 지난 2024년에야 7전 8기로 원내에 입성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바로 런던 금속거래소(LME)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 금수저 엘리트 코스를 밟은 기존 영국 정치인들과 결이 다른 인물로 평가된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