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무대보다 컸던 폭스뉴스 세트...트럼프 정치의 '편 가르기' 풍경

3줄 요약
트럼프 연설 생중계한 주요 채널 폭스뉴스뿐
권력 핵심 인사들 폭스뉴스 부스 드나들어
전당대회장 빈 좌석 외연 확장 한계
9일 미국 공화당 사상 처음으로 중간선거 전당대회가 열렸던 텍사스주 댈러스의 '아메리칸 에어라인 센터'. 빨간 원 안에 친(親)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방송 세트가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던 맞은 편의 메인 무대보다도 몇 배는 큰 규모다. 미국 내 다른 방송사들의 세트는 모두 경기장 위층 구석진 자리에 몰려 있었다. /박국희 특파원
9일 미국 공화당 사상 처음으로 중간선거 전당대회가 열렸던 텍사스주 댈러스의 '아메리칸 에어라인 센터'. 빨간 원 안에 친(親)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방송 세트가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던 맞은 편의 메인 무대보다도 몇 배는 큰 규모다. 미국 내 다른 방송사들의 세트는 모두 경기장 위층 구석진 자리에 몰려 있었다. /박국희 특파원

9일(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공화당 사상 처음으로 열린 중간선거 전당대회장을 둘러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행사장 한복판에 거대하게 자리 잡은 한 방송사 세트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연사들이 연설하는 메인 무대를 마주 보는 정가운데에, 메인 무대보다 몇 배는 큰 규모의 위용을 자랑했다. CNN, NBC 등 미국 내 다른 주요 방송사들의 세트는 행사장 위층 구석자리에 소규모로 모두 몰려 있었다.

그날 밤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트럼프의 연설보다 미 프로풋볼(NFL) 개막전이나 정규 프로그램 방송을 택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트럼프의 연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생중계한 주요 뉴스 채널은 폭스뉴스뿐이었다. 행사장 안에서도, 미국 안방에서도 폭스뉴스는 가장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붙들고 있었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폭스뉴스 간판 앵커 숀 해니티와 함께 있는 모습. /박국희 특파원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폭스뉴스 간판 앵커 숀 해니티와 함께 있는 모습. /박국희 특파원

더 인상적인 장면은 또 있었다. 트럼프의 최측근이면서도 평소 공개 석상 노출을 극도로 자제해 ‘은둔의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폭스뉴스 세트를 찾아 간판 진행자 숀 해니티와 장시간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와일스는 트럼프의 핵심 측근이자 백악관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들을 수 없었지만, 공개된 장소에서 주변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듯한 두 사람의 편안한 모습은 그들의 관계가 평소 얼마나 가까운지를 짐작하게 했다.

육아를 이유로 최근 사임한 캐럴라인 레빗 전 백악관 대변인을 비롯해 테드 크루즈 텍사스 공화당 상원의원 등 권력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폭스뉴스 세트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당대회 무대 밖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핵심 인사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폭스뉴스 세트처럼 보였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전 대변인과 테드 크루즈 공화당 텍사스 상원의원이 폭스뉴스에 출연하고 있다. /박국희 특파원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전 대변인과 테드 크루즈 공화당 텍사스 상원의원이 폭스뉴스에 출연하고 있다. /박국희 특파원

한국의 정치 행사였다면 특정 언론사 한 곳이 행사장의 가장 좋은 위치를 독점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힘들다. 더구나 대통령 비서실장과 권력 핵심 인사들이 그 언론사에만 몰려가 기자들과 공개적으로 어울리는 장면 역시 논란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현장에서는 누구도 이 장면을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트럼프 시대 미국 정치와 언론의 양극화가 이미 너무 익숙한 풍경이 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비판적 언론을 오랫동안 ‘가짜 뉴스’라 공격해왔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매체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폭스뉴스 기자, 앵커 중 트럼프 행정부에 입각한 인물들을 두 손에 모두 꼽기 힘들어 ‘폭스 내각’이라는 말도 나왔다. 문제는 이런 트럼프식 정치가 지지층을 단단히 묶는 데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겠느냐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전당대회장에는 평소 트럼프 행사답지 않게 빈 좌석이 많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가 댈러스의 2만명 규모 경기장도 다 채우지 못한다면, 11월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무대 앞 1층 객석에서 열광한 사람들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지만 상층부의 빈 좌석이야말로 선거의 승패를 가를 유권자들을 상징한다고 짚었다. 이미 자신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만으로는 선거를 이길 수 없고, 결국 트럼프가 채워야 하는 것은 1층 객석이 아니라 그 위층의 빈자리라는 것이다.

공화당 전당대회 행사장 상층의 빈자리. /박국희 특파원
공화당 전당대회 행사장 상층의 빈자리. /박국희 특파원

트럼프는 이날 “내가 투표용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자기 편은 더욱 단단히 묶고, 비판적 언론은 적으로 돌리며, 우호적인 미디어와는 더욱 가까워지는 정치가 핵심 지지층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간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이미 트럼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들이다.

행사장 한가운데의 폭스뉴스 세트는 트럼프 정치의 강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했다. 화려한 폭스뉴스 세트 조명보다 어두운 구석에 비어 있던 좌석들이 더 오래 눈에 남았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