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미훈련 축소"… 北·이란에 비핵화 '다른 잣대'

"김정은과 좋다" 北 압박 줄이고
'이란 비핵화' 참여 안한 韓 비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photo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군사분계선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방위의 핵심인 연합 군사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전격 지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관계가 좋고 북한이 자신에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의 이란 비핵화 노력에 동참하지 않았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동맹인 한국에는 이란 비핵화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압박하면서, 정작 ‘핵보유국’을 주장하며 비핵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북한에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낸 것이다. 최근 통상과 안보를 가리지 않고 한미 사이에 마찰이 이어져 온 만큼, 이번 발언에는 한국 정부를 향한 트럼프의 누적된 불만도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17일 이와 관련 “한미는 그동안 연합 훈련에 대해 긴밀히 조율해 왔으며 앞으로도 공조해 나갈 것”이라며 “북미 정상 간 우호적인 관계가 북미대화로 이어져 한반도 평화·안정을 진전시키기 위한 논의가 개시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16일(현지 시각)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북한의 김정은과 내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미국이 오래전에 한국과 연합 군사훈련에 참가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훈련은 많은 비용이 들고 미국이 그중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면서 “그 뿐 아니라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위협적이지 않고 존중해온 나라에 완전히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훈련을 “상당히 축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글은 한미 을지자유의방패(UFS) 훈련이 시작되는 시점에 올라왔다.

김정은·김주애만 초점 맞춘 北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에서 네번째)이 딸 김주애(김정은 옆), 부인 리설주와 함께 16일 열린 광복 81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김주애만 초점 맞춘 北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에서 네번째)이 딸 김주애(김정은 옆), 부인 리설주와 함께 16일 열린 광복 81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트럼프는 이어 “다소 관련 없는 이야기이지만”이라며 “최근 한국 대통령에게 이란 비핵화에 동참할 의향을 물었지만 그들은 ‘사양하겠다(No thanks)’고 했다”고 썼다. 트럼프는 두 사안을 직접 연계하지는 않았지만, 연합훈련 축소를 발표하는 글에서 한국의 이란전 비협조를 굳이 함께 거론하면서 이 문제가 훈련 축소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이란전 돌파구 막힌 트럼프, 北 김정은으로 눈 돌려

트럼프는 1기 때부터 수차례에 걸쳐 연합훈련에 대해 “돈이 많이 든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실제 훈련 중단·축소로 이어졌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대남 핵타격까지 위협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트럼프의 훈련 축소 지시는 ‘비핵화’라는 잣대를 한국과 북한에 정반대로 적용하는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이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벌이고 있는 전쟁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 삼으면서, 정작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연합훈련은 김정은과의 개인적 친분을 내세워 줄이겠다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이란과 6개월 넘게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지난 6월 마련했던 휴전 합의가 무너진 뒤 비핵화를 포함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상대로 다시 훈련 축소부터 꺼내든 것을 두고 외교적 돌파구가 막힌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개인 외교로 다시 눈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가 훈련 축소를 설명하면서 굳이 한국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끌어들인 대목은 최근 한·미 관계의 기류와도 겹친다. 블룸버그는 한국이 이란전에서 미국이 원하는 만큼 지원하지 않은 점과 함께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20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프로젝트의 진척이 더딘 점도 트럼프의 불만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시작된 쿠팡 문제와 관련 하원 법사위가 “한국 정부가 쿠팡을 표적으로 삼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자 백악관까지 나서 “불공정한 관행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사태가 악화됐다.

안보 분야에서도 마찰이 이어져 왔다. 지난 2월 주한미군이 서해에서 실시한 공중훈련 과정에서 중국 전투기가 대응 출격하자 안규백 국방장관이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직접 항의한 사실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유엔군사령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와 정전협정 이행 기능을 묶는 새 여단 창설을 추진하는 문제를 놓고도 잡음이 났다. 여기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북 정보 공개를 둘러싼 갈등까지 더해지는 등 올 들어 한미 안보 당국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충돌이 반복돼왔다.

청와대는 이날 트럼프의 ‘이란 비핵화 비협조’ 불만 제기에 대해 “정부는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 자유 통항 회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에 적극 참여해 왔다”며 “한반도 대비태세와 국내법 절차 등을 감안해 실질적, 군사적 기여 방안을 미측과 긴밀히 논의 중”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재명 정권이 자초한 외교 참사”라고 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