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군사 강국인 이스라엘과 튀르키예가 시리아에서의 군사 주도권을 두고 연일 외교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미국과 함께 이란을 공습한 이스라엘의 중동 내 활동이 급속히 팽창하자, 튀르키예가 본격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통적 군사 동맹이고, 튀르키예 역시 미국과 함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이다. 시리아는 2024년 12월 친이란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붕괴된 뒤 체제 전환 중이지만, 종교·민족 문제가 얽힌 잠재적 화약고이자 요충지다.
이스라엘은 지난 18일 시리아의 아부 알주흐르 공군 기지를 폭격했다. 이곳은 이스라엘·시리아 국경에서 300㎞ 떨어진 곳으로, 튀르키예·시리아 국경과 가깝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시리아가 인근 공군 기지에 튀르키예 병력 배치를 허용하면서 ‘현상 유지’ 원칙을 깨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미국 측에도 “튀르키예의 군사력 증강을 막으려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튀르키예는 즉각 반발했다. 정부 관계자는 “해당 기지엔 우리 군이 배치되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들을 폭격하고 지역의 불안정을 촉발하기 위해 핑곗거리를 날조하고 있다”고 했다. 튀르키예 대통령실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0월 자국 총선을 앞두고 중동 내 불안정을 초래하는 팽창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며 “공격적이고 강압적인 정책을 포기하고, 국제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에얄 자미르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19일 시리아 남부 점령지를 방문, 튀르키예를 겨냥해 “적대 세력이 우리 국경에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네타냐후 역시 논란이 된 공습이 “튀르키예가 우리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라며 “우리를 위협하며 남하하는 군사력 증강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 말라(Don’t)”라고 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 장관은 20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거론하며 “그가 시리아에서 튀르키예를 위험한 모험에 끌어들이고 있다”고 했다. 상대국 정상에 대한 이례적 비난이었다. 그러자 튀르키예 대통령실은 “파렴치한 네타냐후의 위협과 거짓말은 그의 두려움과 망상을 보여줄 뿐”이라고 받아쳤다. 튀르키예 국방부는 “시리아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번 공습에도 시리아 군사 지원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리아에서는 알아사드 정권 붕괴 후 수니파 반군 출신 아흐메드 알 샤라가 임시 정부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임시 정부를 이루는 여러 정파 간 이해가 엇갈리고 테러가 빈발하는 등 정정 불안 상황이 지속되면서 튀르키예와 이스라엘 모두 필사적으로 시리아에 대한 영향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시리아의 복잡한 정세가 자국 안보 이익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900㎞ 넘게 국경을 맞댄 시리아에 친(親)튀르키예 성향의 안정적인 중앙정부를 세우고 반튀르키예 성향의 쿠르드계 무장 세력의 독립 운동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 안보 이익이다. 이스라엘은 과거 중동 전쟁을 통해 점령해 실효 지배 중인 골란고원의 북쪽에 강력한 시리아군이 재건되거나 튀르키예군이 남하하는 상황을 치명적 안보 위협으로 간주한다. 전문가들은 “결국 튀르키예가 원하는 ‘강하고 통합된 친튀르키예 성향의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추구하는 ‘군사력이 제거된 허약한 시리아’라는 상반된 구상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톰 배럭 주튀르키예 미국 대사 겸 시리아 특사는 “현재 상황은 이스라엘·튀르키예 간 직접적인 군사 충돌로 급속히 확대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도 “이스라엘에 시리아와 튀르키예는 또 다른 안보 공포”라며 “현재까지 이란·레바논 헤즈볼라 축을 공격했던 이스라엘을 향해 튀르키예가 본격적으로 맞설 태세”라고 했다.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군부 세력이 근대화를 이끈 튀르키예는 1949년 갓 건국한 이스라엘을 공식 승인했다. 이슬람 국가 중 최초였다. 하지만 두 나라에서 ‘스트롱맨’들이 장기 집권하면서 관계가 나빠지고 있다. 2014년부터 튀르키예 대통령으로 재임 중인 에르도안은 세속주의에서 탈피하고 이슬람주의와 튀르크 민족주의를 추구한다. 이스라엘 역대 최장기 집권(19년) 총리인 네타냐후도 유대교 민족주의의 ‘대(大)이스라엘’ 구상을 내세우며 국제사회의 팔레스타인과의 평화적 공존 구상(두 국가 해법)을 부정한다.
양국 갈등은 2023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지난 2월 터진 미국·이란 전쟁을 거치며 계속 악화됐다. 에르도안은 네타냐후를 히틀러에 비유했고, 이스라엘은 최근 튀르키예 전신 오스만 제국 시기 발생한 ‘기독교계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공식 인정했다.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의 충돌은 앞으로 중동 정세를 흔들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튀르키예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이슬람권 유일의 핵 보유국인 파키스탄과 나토식 집단 방위를 골자로 하는 ‘메카 동맹’을 결성했다. 수니파 이슬람을 구심점으로 한 세 나라의 동맹이 이스라엘의 안보 불안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