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트럼프에 배신감 느껴…러 정유시설 다시 공격"

"우리 국민 죽어가는데 정보 끊고, 스타링크 제한…미국에 배신감 느껴" 작심 비판
"전쟁 이기려면 미국의 신뢰받는 파트너 되는 것 필수적이지만, 우리가 관계 망치진 않았다"
"어떻게 트럼프가 오늘날 실존하는 惡 푸틴과 친구가 되나"

16일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참석을 앞두고, 영국 런던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 금지는 끝났다. 제한은 풀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스(FT), 언론인 피어슨 모건 등과의 인터뷰에서 말을 아끼지 않았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요구대로 러시아 에너지 시설 공격을 중단했지만, 그 결과는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대한 미국의 조기 경보(警報) 정보 공유 중단과 우크라이나 공격 드론의 스타쉴드(Starshield) 위성 이용에 대한 접근 제한이었다며, “배신감을 느낀다” “누가 트럼프를 조언하는지 모르지만, 잘못됐다. 이것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는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앤디 번햄 영국 총리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입구에서 제12중대 아일랜드 근위대의 의전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는 또 찰스 3세 국왕을 접견했다. /AFP 연합뉴스
앤디 번햄 영국 총리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입구에서 제12중대 아일랜드 근위대의 의전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는 또 찰스 3세 국왕을 접견했다. /AFP 연합뉴스

젤렌스키는 트럼프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말했다. 15일 FT 인터뷰에서 트럼프와의 관계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트럼프는 독재자와 억만장자들에 대해 본능적으로 친밀감을 느낀다며 “그[트럼프]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공개적으로 크게 말한다. 그런 자들이 20,30,40년 집권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매우 강력하다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우리에게 적이고, 오늘날 실존하는 악(the real evil)”이라며 “어떻게 트럼프가 그와 친구가 될 수 있느냐. 나는 그건 실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의 FT 인터뷰가 공개되고, 우크라이나 측은 14일 밤~15일 새벽 모스크바 남동쪽에 위치한 러시아 랴잔 주의 정유시설을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랴잔 주지사도 소셜미디어에 한 정유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디젤 가격을 낮추기 위해, 10일 푸틴과 90분간 통화를 하고 러시아산 디젤 30만 톤을 즉시 들여오고, 내년 4월까지 수백 만 톤을 추가로 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와 의회가 취해 온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젤렌스키가 여섯 차례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 요구를 무시했다며 “우크라이나는 새 대통령을 뽑을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FT 인터뷰에서 “우리 군 관계자들이 미국 측으로부터 ‘에너지 공격을 중단하지 않으면 정보를 끊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미국의 요구에 맞춰 3일간 에너지 시설 공격을 멈췄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반 시설을 계속 공격했고 1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었다”고 말했다.

직설적이고 논쟁적인 인터뷰로 유명한 영국의 언론인 피어슨 모건이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시사 토크 쇼에 출연한 젤렌스키/유튜브 스크린샷
직설적이고 논쟁적인 인터뷰로 유명한 영국의 언론인 피어슨 모건이 유튜브에서 진행하는 시사 토크 쇼에 출연한 젤렌스키/유튜브 스크린샷

피어슨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인 ‘피어스 모건 언센서드(Uncensored)’에 출연해서는 “에너지 공격을 멈추라는 말에, 감정을 억누르고 미국 파트너들에게 ‘그렇게 하겠지만, 러시아는 몇 시간, 며칠 안에 우리 에너지 시설을 공격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날 밤 공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그런데 그들은 파트너 간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타링크 차단 조치를 취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위성 시스템의 일시적 장애나 기술적 결함 가능성을 일축하고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었고, 의지(will)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실은 15일 스타링크에 대한 이용 기능이 복구됐으며, 속도 제한도 풀렸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앞서 이틀 동안 미 국방부가 비용을 부담하는 스타링크의 군사용 버전인 스타쉴드의 사용이 시속 100마일(약 161㎞)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드론과 고속 주행 군(軍)차량에서는 접속이 제한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스타링크ㆍ스타쉴드를 운영하는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는 14일 소셜미디어 X에 “스타링크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된 군사용 위성통신망인 스타쉴드 시스템은 미국 정부가 소유, 통제한다”며 “이동 속도나 사용량에 대한 제한은 미군이 결정하며, 궁극적으로는 POTUS(미국 대통령)가 결정한다”고 썼다.

젤렌스키는 FT 인터뷰에서 미국의 지원 없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시인하고,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정직한 전략적 파트너로 남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미국과의 어떤 관계도 망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가 계속 공격해도 백악관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러시아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멈출 수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으로부터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을 더 많이 제공받는 경우에만 동의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게 ‘최소한의 요구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의 비즈니스는 “흥미롭고” 다음엔 ‘가스 거래’가 될 것이라면서도, 트럼프가 미국 내에서도 반발에 직면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젤렌스키는 “사람들이 살려고 애쓰고 싸우고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런 공격적인 자들과 비즈니스를 한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두가 묻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푸틴이 현재 전쟁에서 실제로 우세한 것도 아니며, 다만 드론과 같은 군사기술의 우위를 둘러싼 경쟁에선 어느 달엔 우크라이나가 앞서고, 다음 달엔 러시아가 앞서는 등 상황이 계속 바뀐다고 설명했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사임 요구’에 대해서는 “수사(rhetoric)적인 표현”으로, 미국인들도 달가워하지 않고 푸틴에게만 도움이 되는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푸틴은 아무런 압박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고, 푸틴은 그럴 때에 공격하고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고 말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