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폭격 이유였던 '핵'은 뒤로 돌리고, 일단 호르무즈 재개방부터
FT "무조건 항복하라던 트럼프, 편의에 의한 이란과의 휴전에 만족"
트럼프, 60일 지나 핵협상 진전 없으면 '재폭격' 위협하지만
중간선거 2개월 여 앞두고 대규모 군사작전 할까 의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란 국가최고안보회의는 14일 세계 원유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즉시 재개방하기로 하는 휴전 합의에 도달했고,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 휴전 양해각서(MOU)에 합의한다고 각각 발표했다.
이로써 2월28일(테헤란 기준)부터 107일을 끈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멈추게 됐고, 국제 기준 유가인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가격도 각각 배럴당 81달러, 84달러 선으로 하락했다.
이번 휴전 합의의 전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주요 언론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애초 침공한 핵심 원인인 이란의 핵프로그램 철폐 문제와 헤즈볼라ㆍ후티 등 이란의 중동 내 대리세력에 대한 지원 금지, 이란이 요구하는 경제제제 해제와 최대 270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의 동결 자산 해제, 헤즈볼라 세력을 뿌리 뽑으려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등과 같은 가장 난해한 쟁점들은 추가 협상으로 돌렸다고 분석했다.
FT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격 1주일 만에 ‘무조건 항복’외에 테헤란과 어떠한 합의도 없다’고 했지만, 이제 그는 미국ㆍ이스라엘 폭격을 견뎌낸 이란의 능력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통해 과시한 이란의 새 협상력을 반영한 딜을 환영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편의(便宜)적 휴전(a truce of convenience)에 만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호르무즈 해협 ‘무료 통행’은 일단 60일
이번 합의에 따르면, 이란은 첫 30일 동안 해협에 설치한 기뢰 제거에 나선다. 따라서 해협은 점진적으로 재개방될 예정이다. 이를 포함해서 60일동안 이란 정부는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에 대해 통행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미국도 이란 항구에 대한 봉쇄를 해제한다. 따라서 선박들이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통과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또 60일 이후의 해협 통과에 대한 통행료 부과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구히 무료 통행”이라고 했지만, 이 문제는 지역 내 협의를 거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과거에도 핵 협상은 질질 끌어
이란은 휴전 합의문에서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1970년 핵 비확산(NPT) 조약에 서명한 이래, 이란은 한 번도 핵무기 제조를 천명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몰래 나탄즈와 아라크에서 우라늄 고농축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이 2002년 처음 들통 났고,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를 확인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는 2018년 1월, 이란이 2003년까지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아마드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을 보여주는 5500쪽 분량의 비밀 문서를 탈취해 공개했다. 따라서 이란의 ‘핵 포기’ 선언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이번 휴전 합의에서 이란은 440㎏의 우라늄 60% 고농축분을 포함해 9000㎏에 달하는 농축 우라늄을 IAEA의 감독 하에 현장에서 희석하겠다고 ‘최소한의 약속’을 했다. 그러나 희석된 농축 우라늄은 나중에 다시 농축될 수 있다. 미국은 해외로 반출하거나 이란과 함께 현장에서 폐기하는 방안을 원한다.
이란 핵 프로그램은 앞으로의 협상에서 다룰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1년 전에 폭격한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비축량은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어 급할 것 없으며 시간을 두고 원자로 연료에 맞게 희석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란은 협상을 질질 끄는 것으로 악명 높다. 오바마 핵합의(JCPOA)는 2003년 IAEA가 이란의 비밀 핵시설을 확인한 때부터 따지면 12년, 2013년 하산 로하니 이란의 새 대통령 취임 이후 진행된 본격적인 협상만 따져도 2년 걸렸다.
◇이란 제재 완화는 협상 진행 및 이행 상황에 따라
핵 협상은 19일의 양해각서 서명 이후 시작된다. 270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의 해외자산 동결은 협상 진행 및 이행 상황에 따라 ‘성과 기반(performance-based)’으로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의 원유 수출은 60일 간 허용한다. 경제적 숨통을 틔워줘 이란이 폭격으로 입한 막대한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휴전 합의에 서명하지 않았다. 14일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 정부가 합의 사실을 발표하기 직전까지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거점인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를 공습해, 앞으로 합의를 무산시키는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 중간선거 2개월 여 남기고 다시 무력 행사할까?
이란은 107일간 미국의 폭격을 견뎠을 뿐 아니라, 여전히 걸프 국가들과 중동의 미군 기지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 협상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않을 경우, “중동 지역 수익의 20%를 받고 군사공격을 재개하겠다”고 NYT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19일부터 60일 뒤인 8월19~20일은 미국 중간선거(11월3일)까지 2~3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실의 대니얼 B 샤피로는 “트럼프가 대규모 군사작전을 재개하리라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며, 미국이 신뢰할 만한 군사적 위협 없이 이란에 압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분석가들은 19일 서명하는 합의가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트럼프는2025년 10월 이스라엘ㆍ하마스 간 휴전을 중재하고 이후 가자 지구를 지중해의 고급 휴양 지역으로 재건하는 ‘평화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여전히 저강도 전투를 계속하는 교착 상태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사남 바킬은 “미국은 제재와 폭격을, 이란은 호르무즈 봉쇄를 무기삼아 서로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그래서 이게 끝난 게 아니라, 트럼프 성향을 보면 이 60일이라는 현 단계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이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FT에 말했다./조선국제 이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