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 반대 의원 낙선 위해 '돈 폭격'… 더 집요해진 유대인 로비 단체
美서 反이스라엘 커지자 활동 강화
미국 동남부 시골 켄터키주가 미국 중간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보수 성향의 농촌 유권자가 많은 켄터키는 전형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이 팽팽히 엇갈리는 두 공화당 후보의 집안싸움에 천문학적인 유대계 자금이 흘러들면서 본선도 아닌 당내 경선(예비선거)이 역대급 ‘쩐의 전쟁’으로 치러지게 된 것이다.
18일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11월 연방 하원 선거에 출마할 켄터키주 4선거구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에 3200만달러(약 480억원) 이상의 광고비가 쏟아졌다. 하원 경선 역사상 최고액이다. 폴리티코가 광고 추적 기관 애드임팩트와 함께 자금 출처를 분석해보니 이 중 28%(900만달러)는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등 미국 내 유대인 권익단체들이 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자금의 용처는 공화당 소속 정치인의 당선이 아닌 낙선 운동이다. 해당 정치인은 공화당 내 소신파로 분류되며 트럼프 2기의 주요 정책을 비판해온 토머스 매시(55) 현 의원이다. 매시는 트럼프가 의회 승인 없이 베네수엘라(1월)에 이어 이란(2월)도 공습하자 비판 목소리를 냈다. 미·이란 전쟁 발발 직후 민주당 로 카나(캘리포니아) 의원과 “의회의 명시적 선전포고 또는 무력 사용 승인 없이는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작전을 종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전쟁권한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를 계기로 매시가 과거에도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원조 결의안, 미국 내 반유대주의 규탄 결의안에도 반대한 이력까지 ‘소환’되면서 유대계 진영의 ‘제거 1순위’로 좌표찍힌 것이다. 공화당 경선에 몰린 자금은 매시를 겨냥한 네거티브 캠페인, 트럼프가 공개 지지한 도전자 에드 갈레인 후보의 측면 지원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하원에 입성한 6선의 매시는 ‘현역 프리미엄’은커녕 막강한 유대인 자금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됐다. 유대인 단체들의 미국 정계 내 로비 활동은 유명하다. 고국 이스라엘의 국익을 위해 의회·행정부 등을 상대로 활발한 로비 활동을 벌여왔다. 의회에 이스라엘 관련 법안이 상정되면 의원들을 상대로 맨투맨 로비에 나서 압도적 표차로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가결되도록 움직여왔다.
이런 로비 활동의 선봉에 있는 단체가 회원 수가 650만명에 이르는 최대규모의 단체 AIPAC다. 연간 운영비만 최소 1억달러(1500억원)에 이르고 수백 명의 전문 연구 인력과 로비스트가 활동하고 있어 ‘신의 조직’, ‘이스라엘의 제2외무부’로도 불려왔다. 이 외에도 ‘미국시오니스트기구’ ‘공화당유대인연맹’ 등의 로비 단체들이 있다. ‘개혁파유대인연합’ 등 친민주당 성향 단체들도 있지만 세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평가다.
입법·정책 관련 로비에 주력하던 유대인 단체의 로비 패턴에 최근 변화가 일고 있다. 반(反)이스라엘 입장을 보이는 의원들을 표적으로 삼고 낙선 운동에 나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후 두드러진다. 2024년 뉴욕주 연방 하원의원이었던 민주당 자말 보우먼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하마스 본거지) 공격을 “집단 학살”로 규정하는 발언 뒤 상대 진영의 집요한 네거티브 캠페인의 타격을 입고 경선에서 패배했다. 당시 AIPAC은 보우먼을 떨어뜨리기 위해 2500만달러를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미주리주 연방 하원의원 코리 부시 역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반유대주의자로 비난받으면서 지역구를 내줬다. 이때도 AIPAC를 통해 상대 진영에 850만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유대인 단체들의 ‘전술 다변화’의 배경으로 미국 내 여론 지형 변화가 꼽힌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초기만 해도 전쟁을 촉발한 하마스에 대한 미국 내 비판 여론이 상당했지만, 이스라엘의 초강경 격퇴전에 대한 비난이 커지면서 보다 광범위하고 치밀한 전략이 요구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란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트럼프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의도에 휘말렸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미국 내 대(對)이스라엘 여론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나빠지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퓨 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60%가 이스라엘에 대해 “비호감”이라고 대답해 1년 전(53%)보다 7%포인트 상승했다. 전통적으로 친이스라엘 성향으로 불리는 보수 공화당층에서조차 50세 미만 공화당원의 57%가 이스라엘에 반감을 나타냈다.
이런 여론 변화는 유대인 단체들의 선전 방식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AIPAC은 자신들의 정치 광고에서 이스라엘을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자신들을 숨기고 대리 단체를 앞세워 친이스라엘 캠페인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스라엘에 대한 견해가 바뀌면서 AIPAC도 전술을 바꾸고 있다”면서 “석유, 담배, 가상 화폐 산업처럼 위장 단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는 미국 정부와 의회 등을 상대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로비 단체다. 1943년 미국의 유대교 랍비 아바 힐렐 실버가 팔레스타인 내 유대인 지원 여론을 조직하기 위해 설립한 미국유대인긴급위원회(AZEC)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 내 회원 수만 650만명 이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 단체 중 하나로 꼽힌다. 막강한 정치자금력과 정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의 대이스라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