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5개市 붕괴... "수천~수만명 깔렸을 것"

126년만의 강진... 한국 교민 피해 확인안돼

24일 규모 7.2와 7.5의 강진이 연이어 덮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매몰된 피해자를 발견해 들것에 묶어 옮기고 있다. 이번 연쇄 강진으로 건물 붕괴와 정전이 잇따르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AFP 연합뉴스
24일 규모 7.2와 7.5의 강진이 연이어 덮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구조대원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매몰된 피해자를 발견해 들것에 묶어 옮기고 있다. 이번 연쇄 강진으로 건물 붕괴와 정전이 잇따르면서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AFP 연합뉴스

24일 오후 6시쯤(현지 시각) 베네수엘라 북부에서 규모 7.2와 7.5의 강진이 39초 간격으로 연이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카라카스를 비롯해 라과이라, 마라카이, 산펠리페, 발렌시아 등 주요 도시에서 건물과 주택이 붕괴되면서 최소 164명이 숨지고 900여 명이 다쳤다. 다수의 주민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있는 상황이라서 사망자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밝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 사망자가 최소 1000명에서 최대 10만명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번 지진은 1900년 규모 7.7의 지진이 카라카스 일대를 강타해 21명이 사망한 뒤 126년만에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지진 발생 지역에서 1700㎞ 떨어진 브라질 아마존 지역에서도 진동이 감지됐다.

24일 규모 7.2와 7.5의 강진이 연이어 덮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24일 규모 7.2와 7.5의 강진이 연이어 덮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적인 지진 다발 지역인 ‘불의 고리’(환태평양 조산대)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카리브판과 남아메리카판 등 두 지각판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 지진 발생이 드물지 않다. 이날 소셜미디어에는 도심 건물이 지진 충격으로 흔들리거나 무너지자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는 장면이 잇따라 올라왔다.

◇공휴일 도심 덮친 7.5 강진… 아파트·호텔 줄줄이 무너져 폐허로

이번 지진은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 정권이 미국의 군사 작전으로 축출되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주도로 정치·경제 체제 재편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축출 전까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국가 인프라 상당수가 노후한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이번 지진 피해가 최대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미국은 기꺼이 도울 준비가 돼 있고, 도울 능력도 충분하다. 우리의 새롭고 소중한 친구들을 위해 함께할 것”이라며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연쇄 강진이 덮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AFP 연합뉴스
24일 연쇄 강진이 덮친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한 어린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다. /AFP 연합뉴스

24일 오후 6시 4분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서쪽으로 약 170㎞ 떨어진 카리브해 연안 도시 모론 인근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불과 39초 뒤 이곳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서 다시 규모 7.5의 강진이 일어났다. 이후 20여 차례 여진이 북부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 몰아닥쳤다. 이 지진으로 카라카스를 비롯해 야라쿠이주(州)의 주도 산펠리페, 라과이라 등 주요 도시에서 건물 외벽이 무너졌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도심은 아수라장이 됐고 곳곳에서 정전과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피해 지역 상당수에서 건물 지붕과 벽체가 함께 무너지는 바람에 매몰된 실종자 수색은 큰 차질을 빚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베네수엘라의 국제 항공 관문인 카라카스 인근 시몬 볼리바르 국제공항도 운영이 중단됐다.

카라카스 공동주택 밀집 지역에선 건물들이 마치 융단 폭격을 받은 듯 초토화됐으며 고급 주택가 팔로스 그란데스까지 강타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주민 헥토르 리치는 AP에 “처음에는 약하게 흔들리다가 점점 강도가 강해졌고, 결국 모두 집에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라과이라에서는 해안가에 있는 호텔이 입구만 겨우 남긴 채 와르르 무너졌다.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이곳에서만 최대 15개 건물이 무너졌다고 밝혔다.

70여 명으로 이뤄진 베네수엘라 한인 사회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현재까지 한국 교민의 인명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교민 이미영(68)씨는 본지에 “교민 단체 채팅방에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도 계속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한 직후 대피한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AFP 연합뉴스
24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한 직후 대피한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AFP 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과거에도 큰 지진이 발생했지만 이번 지진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00년 동안 베네수엘라 북부 지역에서는 5차례의 대형 지진이 발생해 총 4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중 절반인 200여 명은 1967년 카라카스에서 발생한 규모 6.6의 지진 때 나왔다. 당시 지진을 경험했던 카라카스의 장노년층 주민들은 이번 지진이 더 크고 무서웠다고 증언했다. 코로 마르티네스(56)는 로이터에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 집 안의 물건들과 냉장고 속 물통들이 떨어졌다.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마리아 로메로(80)는 BBC에 “이번 지진은 끔찍했다. 1967년 지진보다 훨씬 더 심했다”고 했다.

앞서 1812년 카라카스와 메리다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약 3만명이 숨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2018년 8월 북부 수크레주에서 규모 7.3의 대형 지진이 발생했지만 6명이 숨지는 등 최근 발생한 지진은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는 크지 않은 흐름이었다. 이 때문에 경제난으로 노후한 주거 환경 개선이 차질을 빚는 등 인재(人災)의 성격이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상섭 국립외교원 교수는 “카라카스 주변에는 안전성이 떨어지는 빈민가와 노후 건물이 많다”며 “내진 설계나 건축 구조상 대비가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규모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25일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의 건물 일대가 전날 덮친 강진으로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된 모습. /AP 연합뉴스
25일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의 건물 일대가 전날 덮친 강진으로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된 모습. /AP 연합뉴스

지진 발생일이 공휴일이라 피해가 커졌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날은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 식민 세력에 대항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 1821년 카라보보 전투를 기념하는 국경일이라 많은 주민이 집에 머물고 있었다.

세계 주요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구호와 지원을 앞다퉈 약속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애도 성명에서 “미국은 이 어려운 시기에 베네수엘라 국민들과 함께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즉시 수색 및 구조 팀, 의료 자원, 그리고 인도적 지원을 베네수엘라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현재 베네수엘라 정부가 사실상 미국의 통제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민심 악화를 우려해 신속하게 지원 방침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축출한 마두로 정권과 밀착했던 중국도 지원 방침을 알렸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베네수엘라 국민이 재앙을 이겨내고 재건할 것으로 확신하며 중국은 필요한 지원을 보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등 중남미 국가 지도자들도 잇따라 긴급 지원 방침을 알렸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