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유학생이 낳은 아이도 美시민권 못 받아
트럼프, 원정출산 차단 행정명령
출산 목적 의심땐 비자 거부 조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자녀의 미국 국적(시민권) 취득을 위한 외국인들의 ‘원정 출산’을 차단하는 두 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1기 임기 때부터 원정 출산 금지를 공언했던 트럼프는 지난해 2기 임기 첫날 행정명령을 발동해 부모의 국적과 무관하게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자동적으로 미국 국적을 부여하는 출생 시민권을 폐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이 “출생 시민권은 수정헌법 14조가 보장한 기본적 권리”라며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위헌으로 판결해 무산시켰다. 그러자 행정명령의 성격을 바꿔 출산 목적의 입국을 막기로 한 것이다.
이날 트럼프가 서명한 ‘원정 출산의 종료’ 행정명령은 외국인이 미국에서 출산할 목적으로 비이민 비자로 입국하는 행위와 이를 알선하는 것을 모두 원정 출산으로 규정했다. 이어 “유학·교환·임시 취업·관광 등 여러 종류의 비이민 비자가 원정출산업자들에게 악용되고 있다”며 국무장관과 국토안보부 장관이 원정 출산 시도자에 대해 입국 금지·비자 발급 거부·여행 허가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트럼프가 함께 서명한 ‘미국 시민권의 의미·가치의 지속적 보호’ 행정명령은 출생 시민권을 인정받을 수 없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우선 부모가 모두 외국인일 경우가 해당한다. 또 부모 중 누구 하나라도 미 정부가 정한 적성국 국민이거나 테러 단체에 소속돼 있는 경우 출생 시민권이 적용될 수 없다. 또 부모 중 누구 하나라도 외국에서 온 대사 등 외교관이나 국제기구 소속 직원이라면 역시 출생 시민권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모 중 누구 하나라도 과거 미국 원정 출산이나 대리 출산에 연루된 경우도 포함된다.
◇‘출생시민권 폐지’ 대법서 막히자, 원정출산 원천 봉쇄로 선회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외교관과 주재원을 비롯해 관광·유학·취업 등을 목적으로 비(非) 이민 비자를 받아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녀에게 미국 국적을 얻게 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에서 소급 적용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 원정 출산 연루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담은 것으로 짐작해볼 때 향후 비자 심사 때 이를 적극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날 행정명령대로 정책이 시행될 경우 비이민 비자 심사가 더욱 까다로워지고 외교관·기업 주재원·유학생 등은 미국 체류 중 자녀를 출산하더라도 부모 모두가 미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출생 시민권 보장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시민권이 미국이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고, 원정 출산을 통해 이를 ‘상품’처럼 취득해서는 안 된다”며 “원정 출산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의 규모가 수십만 명에 달해 이 같은 제도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원정 출산 당사자뿐 아니라 이들의 미국행과 출산을 알선하는 브로커 조직 등 ‘관련 산업’까지 겨냥했다는 뜻이다. 미국 이민정책연구소(MPI)에 따르면 미국 내 원정 출산 규모는 연간 약 2만2000~2만6000명으로 추정된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 또한 “관광객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출산을 목적으로 하고 미국 시민권을 얻으려는 것이라면 미국 정부를 상대로 사기를 저지르는 것”이라며 “그런 아이들은 복지 혜택, 투표권, 그리고 오직 미국인에게만 속한 모든 권리와 특권을 누리게 된다”고 했다.
백악관은 이번 행정명령이 대법원 판결 취지와 상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첫 행정명령 발동 때와 마찬가지로 위헌으로 판단해 달라는 무효 소송이 잇따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라 미 영토 내 출생자의 시민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라며, 이번 조치 역시 이전 행정명령과 마찬가지로 법원에서 무효화될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