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곳곳 내걸린 한국어 간판… 韓 전통 공연엔 "브라보"
세계 최대 佛 아비뇽 페스티벌
공식 초청 언어로 '한국어' 선정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시간 속의 너와 나’ ‘사유의 카페 서점 5M’...
중세 고도(古都) 아비뇽 곳곳에 내걸린 한국어 간판은 여름의 햇살처럼 강렬한 노랑이었다. 7월 4~25일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공연 예술 축제 중 하나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올해 공식 초청 언어가 한국어다. 총 47편 공식 초청작 중 9편이 한국 작품으로, 아비뇽 페스티벌에 한국 작품이 공식 초청된 것은 28년 만이다.
아비뇽 현지는 35도 안팎의 고온으로 폭염 경보가 발령된 상황. 한국 작품에 대한 현지 관심은 폭염보다도 뜨거웠다. 음악·춤·곡예 등이 어우러진 한국 전통 연희(演戲)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긴: 연희해체프로젝트Ⅰ’(리퀴드 사운드)의 지난 11일 공연은 전석 매진이었다. 고딕 석조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공연자들의 움직임이 펼쳐지자 여기저기서 ‘브라보’ 환호성이 터졌다. 프랑스 르몽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안무였다”며 “흰 리본이 사방으로 허공을 가르며 원을 그리고 정교하게 얽히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했다.
현지 관계자는 “일부 공연은 표가 없을 정도로 현지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이경성의 ‘섬 이야기’, 허성임 안무가의 ‘1도씨’,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눈, 눈, 눈’ 제주 해녀의 삶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 사회의 어두움을 탐구한 ‘물질’에 대한 현지 관심도 높았다. 르몽드는 “임산부, 성소수자, 성형 중독자, 공장 노동자를 연기하는 출연진은 한국 사회에서 취약하거나 소외된 인물들을 그려낸다”고 했다.
연극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국제 입센상을 아시아 최초로 받은 구자하 작가도 대표작인 하마티아 3부작 중 ‘쿠쿠’·‘한국 연극의 역사’ 등 2개 작품과 ‘하리보 김치’로 관객들을 만난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15~16일 아비뇽 교황궁 ‘명예의 뜰’에서 열리는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행사엔 프랑스 국민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한국 배우 이혜영이 낭독자로 나선다.
이탈리아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다리아 데플로리안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각색한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를 내놨다. 그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오가는 한강의 독특한 상상력은 내게 특별한 연극적 비전을 제시한다”며 “오늘과 어제를 오가는 유령 같은 서사는 무대 위에서 구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현지 관람객들은 “한국의 공연 작품들은 어두운 현대사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슬픔을 관통한 희망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같은 호평을 쏟아냈다. AFP는 “한국어를 초청 언어로 선정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유럽 무대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한국 공연 예술이 대거 소개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문학·미술 관심도 뜨거워
현장에 마련된 한국문학도서전엔 현지인 수백 명이 몰려 한강 등의 작품이 완판되는 상황이다. 한강 작품을 비롯,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천명관의 ‘고래’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서점 관계자는 “현재까지 한강 작품은 수백 권이 팔리는 바람에 재고가 없어 주문을 다시 넣었다”고 했다. 곳곳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구입하는 현지인들이 눈에 띄었다. 한강 작가는 지난 11일 ‘독자와의 대화’ 행사에서 ‘문학의 보편적 연결성’을 강조했는데, 프랑스의 한강 팬들은 “작가를 직접 볼 수 있어 너무 기뻤다”고 했다.
도서전을 마련한 문화원 측은 “프랑스 현지에선 일본 문학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이고 그다음에 중국이었는데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아비뇽 페스티벌 참석자들은 한국어의 ‘소리’와 한글의 ‘조형’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한강 작가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아비뇽 교황청에선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이우환 화백 작품이 올해 11월까지 전시된다. 아비뇽과 가까운 ‘고흐의 도시’ 아를에선 영화감독 박찬욱의 사진전이 이우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 관계자는 “하루에 몰려오는 현지인이 1200명을 넘는데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