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랐던 플라비우 '美 야반도주'... 구심점 잃은 브라질 야권

3줄 요약
보우소나루, 자금세탁 수사 중 미국 긴급 출국
자유당 원내 1당 달성했으나 지도자 공백 위기
야권 의회 견제 전략 차질·브라질-미국 갈등 우려
브라질 대선에서 패배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인근 오파로카 공항에 착륙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자금세탁 의혹으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은 그는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총선에서 상·하원 원내 1당을 차지한 보수 성향의 자유당(PL)은 보우소나루의 갑작스러운 출국으로 야권 지도자 공백 사태를 맞았다. /AFP 연합뉴스
브라질 대선에서 패배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28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인근 오파로카 공항에 착륙해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자금세탁 의혹으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은 그는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를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총선에서 상·하원 원내 1당을 차지한 보수 성향의 자유당(PL)은 보우소나루의 갑작스러운 출국으로 야권 지도자 공백 사태를 맞았다. /AFP 연합뉴스

지난 25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브라질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81) 대통령에게 역전패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45) 상원의원이 브라질을 떠나 미국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그가 갑작스럽게 사라지자 브라질에서는 ‘실종설’ 등 온갖 풍문이 돌았는데, 24시간 만에 가족과 함께 타국에서 생사가 확인된 것이다. 플라비우의 지지자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고 그를 중심으로 뭉치려 했던 야권도 지도자의 야반도주에 충격받았다. 대선과 함께 열린 총선에서 야권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가운데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지며 정국이 급격한 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브라질 대선 결선에서 패배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가족들과 전세기를 타고 미국 마이애미에 28일(현지 시각) 도착한 뒤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차로 이동하는 모습. /X
브라질 대선 결선에서 패배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가족들과 전세기를 타고 미국 마이애미에 28일(현지 시각) 도착한 뒤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차로 이동하는 모습. /X

◇24시간의 비밀스러운 여정

28일(현지 시각) 오전 9시 24분 미국 마이애미 인근에 있는 오파로카 이그제큐티브 공항 활주로에 대형 상업용 제트기 ‘걸프스트림 G400’이 내려앉았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백팩을 멘 플라비우가 아내, 두 딸과 함께 내렸다. 그와 가족들은 대형 우산 4개 뒤에 숨어 공항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탄 뒤 어디론가 이동했다. 현재 머물고 있는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플라비우가 말도 없이 브라질에서 사라졌다가 마이애미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걸린 24시간은 영화를 방불케 했다. 브라질 선거 당국이 대선 최종 결과를 발표하고 불과 7분 뒤 연방경찰은 자금 세탁 수사 등에 연루된 그의 여권을 압수하는 조치에 착수했다. 플라비우는 26일 소셜미디어에 당국에서 여권을 압수하려 한다며 “나는 나라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27일 플라비우는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하루 종일 측근들과 선거 이후의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전 8시 선거운동을 총괄했던 최측근 호제리우 마리뉴 상원의원에게 문자메시지로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후 마리뉴를 비롯한 모든 사람과 연락이 두절됐다. 심지어 징역 27년형을 선고받고 가택연금 중인 그의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역시 뉴스를 보고 아들이 사라진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의 행적을 두고 엇갈린 보도가 쏟아졌다. 아르헨티나 언론에서는 플라비우와 가족이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질 경찰은 국경 출입 기록을 조사하는 동안 아르헨티나 이민국은 “플라비우가 아르헨티나 영토에 입국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브라질 언론에서는 ‘플라비우가 베네수엘라를 경유해 미국으로 갔다’ ‘이미 플로리다에 도착해 동생과 함께 있다’ 등 진위를 알 수 없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 시각 플라비우 가족은 전혀 다른 경로로 브라질을 탈출하고 있었다. 그는 27일 오후 10시 50분 육로로 탄크레도 네베스 국제대교를 건너 브라질 포스두이구아수에서 아르헨티나 푸에르토이구아수로 들어갔다. 이때 그는 브라질 여권 대신 미리 소지한 이탈리아 여권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택을 출발할 때는 위장 차량이 동원돼 집 앞에서 대기 중이던 언론사도 그를 추적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다음 날 오전 0시 22분 푸에르토이구아수 국제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에콰도르 과야킬로 향했고, 오전 4시 22분 이곳에서 다시 전세기를 이용해 카리브해를 가로질러 마이애미로 출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고문인 제이슨 밀러 등이 플라비우를 돕기 위해 직접 미국행 전세기를 수배한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그의 이동 경로를 감추기 위해 측근들이 쏟아낸 허위 정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면서 “24시간의 비밀스러운 여정 끝에 마이애미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28일(현지 시각) 미국 마이애미에 도착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브라질 상원의원과 가족들이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차에 타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28일(현지 시각) 미국 마이애미에 도착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브라질 상원의원과 가족들이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차에 타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충격에 빠진 야권

플라비우가 속한 보수 성향 자유당은 충격에 빠졌다. 자유당은 대통령직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의회에서는 세력을 키웠다. 브라질 상원 공식 자료에 따르면 자유당은 하원 전체 513석 중 121석을 확보했다. 2022년 선거보다 24석 늘어난 최대 정당이다. 상원에서도 이번에 19명을 당선시켜 기존 의원을 포함해 전체 81석 중 28석을 차지하게 됐다. 단독 과반은 아니지만 다른 우파·중도 정당과 공조해 룰라 정부를 견제할 기반을 마련했지만, 구심점이 사라진 것이다. 마리뉴 상원의원은 “우리는 놀랐다. 바로 어제 보우소나루가 약 6000만표를 얻은 만큼 야권 지도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논의했었다”고 했다.

향후 플라비우의 정치적 경로도 불투명하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뒤 내놓은 성명에서 “나는 브라질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브라질을 떠난 것”이라면서 스스로를 ‘브라질의 지도자’라고 칭했다. 또 이번 대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내놓지 못했다. 심지어 측근들조차 플라비우가 주장하는 부정선거에 대해 “증거가 없다”고 했다. WP는 “플라비우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브라질 정치에 복귀할 뚜렷한 경로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동안 플라비우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트럼프도 그의 입국은 허락했지만 대선 불복 주장까지 지원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기자들에게 “그가 미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겠다”면서도 “나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 사건이 향후 미국과 브라질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