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조원 투신 시도까지… '바다 위 감옥' 된 링컨함

 9개월째 중동 작전… 美중부사령관, 위험 신호 커지자 현장 찾아

미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이 2021년 1월 샌디에이고를 떠날 때 갑판에 승조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링컨함은 올해 초 중동으로 배치돼 대이란 군사작전에 투입됐으며, 최근 200일 넘게 기항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승조원들의 사기 저하와 정신 건강 문제 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AP 연합뉴스
미 핵추진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이 2021년 1월 샌디에이고를 떠날 때 갑판에 승조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링컨함은 올해 초 중동으로 배치돼 대이란 군사작전에 투입됐으며, 최근 200일 넘게 기항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승조원들의 사기 저하와 정신 건강 문제 등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AP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을 떠난 뒤 약 9개월 동안 중동 지역에 발이 묶인 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에서 장기 파병에 따른 문제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급기야 승조원들의 자살 시도까지 이어지면서 논란이 되자 대(對)이란 군사 작전을 총괄하는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이 직접 링컨함을 찾는 등 비상 조치에 나섰다.

◇떨어진 사기…연이은 자살 충동 호소

16일(현지 시각) 미 중부사령부에 따르면 이란전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4성 장군 쿠퍼 사령관은 전날 중동 해역에서 작전 중인 링컨함에 승선했다. 쿠퍼 사령관은 성명에서 “링컨 항모타격단은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강력한 팀이며 이들이 이룬 성과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는다”면서 “역사는 이번 파병을 현대전 중 가장 강도 높고 중대한 파병 가운데 하나로 기록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도 “미 해군이 운용 중인 항공모함 11척 중 링컨함은 정신 건강 관련 사례가 가장 적은 항모 중 하나”라면서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고 정신 건강 역시 신체적·영적 건강과 마찬가지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링컨함 오른 중부사령관 -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이 지난 15일 중동 해역에서 작전 중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을 찾아 승조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 X
링컨함 오른 중부사령관 -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관이 지난 15일 중동 해역에서 작전 중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을 찾아 승조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미 중부사령부 X

쿠퍼 사령관은 이날 바레인·이라크·이스라엘·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10일간의 순방을 마무리한 뒤 링컨함에 올랐다. 중동 해군 전력을 총괄하는 최고위급 현장 사령관이 작전을 수행하는 항공모함에 승선한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쿠퍼 사령관은 최근 승조원들의 정신 건강이 악화되고 투신 시도가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논란이 되자 전격적으로 링컨함을 찾았다. 미군 전문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 등에 따르면 링컨함에 탑승한 승조원 일부는 누적된 피로와 사기 저하를 호소하고 있고, 여러 차례 자살 충동 보고도 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달 초 수병 1명이 함상에서 바다로 뛰어내렸지만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고 구조됐다고 한다.

지난 7일 샌디에이고에서 승조원 가족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는 한 여성이 헝 카오 해군 장관 대행 등 군 수뇌부에게 “남편에게서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고 호소했다. 해군은 링컨함에 상담사와 군종 목사, 의료진 등이 배치돼 있으며 추가 정신건강 전문 인력 파견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일 넘게 기항 못 해…식수·빨래·우편까지 차질

세계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미군이지만 장기 파병에 따른 체력 저하와 물리적 결핍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다. 5000여 명을 태운 링컨함은 지난해 11월 21일 샌디에이고를 출항해 당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1월 중동으로 전환 배치됐다. 이후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에 대응하고 이란 항구 봉쇄 작전 등에 투입됐다. 미군에 따르면 링컨함은 괌과 오만에 짧게 기항했지만 200일 이상 전투 지역에 머물렀고, 1만회 이상 출격을 수행했다. 갑판 위에서 승조원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 전투기 등의 출격을 위해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는 것이다.

보급품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성조지 등에 따르면 식량과 식수가 부족해지고 우편물 배송이 수개월씩 지연됐으며, 한때 일주일 넘게 빨래를 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고, 일부 화장실도 고장나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도 수개월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달 오만에 잠시 기항해 물자를 보급받으면서 상당수 문제는 개선됐지만, 승조원 대부분은 항구 내 보안 구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란의 공격 위협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장병들이 감당해야 한다. 지난 3월 이란은 “탄도미사일 4발로 링컨함을 타격했다”고 했지만, 중부사령부는 “거짓말”이라고 했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링컨함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링컨함은 당초 지난 5월쯤 귀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임무가 연장되면서 아직 정확한 공식 귀환 날짜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한 승조원은 성조지에 “파병 내내 쉬지 않고 계속 임무에 투입됐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집에 돌아갈 날짜뿐”이라고 했다.

◇압박하는 美 의회, 국방장관 “상황 왜곡”

미 정치권에서는 대책을 마련하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압박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리처드 블루먼솔 민주당 상원의원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카오 대행에게 서한을 보내 식수 오염과 배관 문제, 물자 부족, 정신건강 악화 등에 대한 대책을 요구했다. 해병대원으로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루벤 가예고 민주당 상원의원은 여야 의원들이 직접 링컨함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복무 실태를 점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링컨함의 열악한 상황에 대한 보고를 일축하며 “상황이 완전히 왜곡됐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장기 배치 문제에 대해 기자들에게 “전혀 충분히 길지 않다”고 했다. NYT에 따르면 링컨함 장기 파병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자 미 해군은 조만간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母港)으로 하는 조지 워싱턴함을 중동으로 이동시켜 링컨함과 교대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