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부유세 공약 통했다… 민주당 강성 진보, 의회로 진격

[트럼프 참패]
상·하원 의원에 대거 당선

/그래픽=정인성
/그래픽=정인성

지난 3일 치른 미국 중간선거가 상·하원 다수당을 거머쥔 민주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민주당 내 강성 진보 세력인 ‘민주사회주의자(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영향력도 더욱 강력해질 전망이다. 온건·중도 성향의 당 지도부와 선명한 대립각을 세워온 DSA 진영 인사들이 의회 내에서 본격적으로 세를 키우면서 미국 정치 전반을 흔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연방의회 등 정치권에 입성한 범DSA 인사들은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20여 명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미국 역사상 첫 무슬림 연방 상원의원이 된 압둘 엘사예드(42)다. 이집트계 이민 2세로 지역 보건 관료로 일하다 정치에 입문한 그는 ‘의료비 완전 무상’, ‘억만장자 부유세’, ‘보편적 주거권’ 등 급진 공약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심을 파고들었다. DSA 대부 격인 버니 샌더스(85) 무소속 연방 상원의원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DSA의 차세대 간판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엘사예드는 4일 당선 수락 연설에서 “나는 항상 ‘인샬라(알라께서 원하신다면)’라고 말했다”며 “하지만 오늘 밤 ‘알함둘릴라(모든 찬양은 알라께)’로 바꿀 수 있다”며 이슬람 색채가 짙은 아랍어 인사를 앞세웠다. JD 밴스 부통령을 “하비비(아랍어로 ‘자기야’)”라고 불렀다. 밴스는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에서 엘사예드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격퇴전을 ‘집단 학살’이라고 불렀던 점을 거론하며 “자신에게 모든 것을 준 나라에 조금이라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공격했다. 그런 밴스를 아랍어로 조롱한 것이다.

DSA의 핵심 멤버로 뉴욕 역사상 첫 무슬림 뉴욕시장인 조란 맘다니(35)의 직·간접적 지원을 받은 MZ세대들도 초선 연방 하원의원으로 워싱턴DC에 입성하게 됐다. 이들은 인권 운동가나 노조 간부 등으로 활동해왔지만 기성 정치 경험은 없는 무명의 신인이었지만 민주당 간판만 확보하면 당선이 유력한 진보 초강세 지역에서 경선에 나서 DSA의 조직적 지원에 힘입어 현역 의원 등 기성 정치인들을 당내 경선에서 꺾었다. 주거권 운동가인 다리알리자 아빌라 슈발리에(32)와 자동차 노조 운동가였던 클레어 발데스(37·이상 뉴욕), 금융 변호사 출신인 멜라트 키로스(29·콜로라도), 교육 상담사로 일했던 안젤라 곤잘레스토레스(32·캘리포니아) 등이다. 이들은 부유세·성소수자 권리 옹호·무상 복지·반이스라엘 등 DSA의 핵심 공약을 앞세웠다. 중간선거와 함께 치른 로스앤젤레스 시장 선거에서는 DSA 진영의 니디아 라만(45) 시의원이 현직 캐런 배스(73) 시장에 박빙 우위를 지키고 있다. 라만이 최종 승리하면 DSA가 미국 동서부 대표 도시의 시정(市政)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들에 앞서 2018년 연방 하원에 입성한 강성 좌파 여성 정치인들도 이번 중간선거를 통해 나란히 5선 고지에 오르면서 DSA의 정치적 존재감이 더욱 커지게 됐다. 엘사예드와 지역구(미시간주)가 같은 팔레스타인계 이민 2세 라시다 탈리브(50), 소말리아 출신으로 미네소타주가 지역구인 일한 오마르(44), 최연소 여성 연방 하원 의원 당선 기록(당시 29세)을 세웠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뉴욕)가 모두 ‘5선 중진’이 됐다. 이 중 전국적 인지도를 자랑하며 샌더스와 함께 DSA의 간판으로 꼽히는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여성 건강에 대해 무관심하다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난자 동결 시술을 앞두고 주사 맞는 장면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등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 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등 생활고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민주당 기득권 세력에서 보기 힘든 과감한 공약을 DSA 진영에서 잇따라 제시하면서 지갑이 얇은 젊은 층과 서민층의 표심을 파고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DSA 진영은 전 국민의 보편적 건강보험을 추구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오바마케어에서 더 나아간 ‘무상 의료(Medicare for All)’, 부동산 가격 상승 억제책으로 제시된 ‘월가 헤지펀드의 주택 매입 금지(Housing for All)’ 등 대중영합적 공약을 앞세웠다.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이런 파격성은 트럼프 정권의 경제 정책에 불만이 많은 도시의 노동자층과 2030 청년 세대의 실존적 분노를 정확히 파고들었다고 브루킹스연구소는 진단했다.

이런 파격성이 의회 권력을 장악한 민주당의 독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도층 민심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온건 성향의 민주당 주류와 노선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DSA와 주류 간 갈등 기류는 벌써부터 불거지고 있다. 미시간주 연방 상원 민주당 경선에서 엘사예드에게 패배했던 온건 진영의 헤일리 스티븐스(현 연방 하원 의원) 후보는 중간선거 직전, 엘사예드의 반이스라엘 노선에 반발해 공화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DSA는 차기 하원 의장이 유력한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보편적 의료와 억만장자 부유세를 핵심 당론으로 채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조기 레임덕 가능성이 커지면서 차기 대선 민주당 내 경쟁이 노선 경쟁과 맞물려 더욱 혼탁해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등 당내 주류 백인 남성이 후보군으로 꼽히지만, 엘사예드와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DSA 인사들의 도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DSA의 목소리가 커질 경우 중도층 당원들의 이탈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끊이지 않는다.

☞민주사회주의자(DSA)

미국을 대표하는 강성 좌파 정치 집단. 1971년 설립된 신미국운동(NAM)과 1973년 창설된 민주사회주의조직위원회(DSOC)가 1982년 통합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무상 복지·노동권 보호·성 소수자 권익 향상·반(反)이스라엘, 페미니즘 등 좌파 진영의 핵심 의제 실현을 목표로 한다. DSA에 공식적으로 속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노선에 동조하는 세력도 범DSA로 분류된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