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전 시도, 공항에 폭발물 드론… 나토 흔드는 러 하이브리드戰

우크라 이어 독일로 공격 확대

3줄 요약
독일 전력망 공격 이틀 연속 정전 유발
변전소 인근 폭발 장치 6개 발견
독일, 러시아 하이브리드전 주요 표적 부상
지난 1일(현지시각) 독일 베르크하임의 암프리온 변전소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폭발이 일어났다. 인근에서 폭발 장치가 발견됨에 따라 독일 당국은 대규모 정전을 노린 의도적 공격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X
지난 1일(현지시각) 독일 베르크하임의 암프리온 변전소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폭발이 일어났다. 인근에서 폭발 장치가 발견됨에 따라 독일 당국은 대규모 정전을 노린 의도적 공격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X

독일에서 공항·전기설비·방산회사 등의 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독일 정부가 라이프치히 공항에 폭발물 드론을 몰래 가져다 놓고 시설물 파괴를 기도한 사건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하고 외교 제재에 돌입한 직후 변전소가 폭발하고, 방산 회사 건물에 방화 공격이 이어진 것이다.

배후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러시아 개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교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사보타주(시설물 파괴)·허위사실 유포 등 비군사적 수단까지 동원하는 ‘하이브리드전’으로 유럽 자유진영의 최대 군사·경제 대국 독일 흔들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뮌헨에 위치한 독일 방산 기업 로데 앤드 슈바르츠 사옥 부근 공사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났다. 불은 조기에 진화됐고 경찰은 불가리아 국적 남녀 두 명을 방화 혐의자로 체포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정치적 동기에서 범행했을 가능성을 수사 중이라고 로이터 등 외신은 전했다. 앞서 1일에는 대규모 정전을 노린 것으로 보이는 전력망 공격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베르크하임에 있는 암프리온 변전소에서 폭발과 송전선 장애가 발생해 인근 석탄 발전소의 설비 5개가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경찰은 변전소 인근 옥수수밭에서 폭발 장치 6개를 발견했다.

같은 날 오전엔 동부 브란덴부르크주 투르노프라일라크 변전소에서 폭발 장치 수십 개가 발견됐다. 일부는 당국이 해체하기 전 폭발하면서 송전 장애가 일어났다. 당국은 두 사건을 “합선과 정전을 의도한 고의적 범죄이자 반헌법적 파괴 공작”이라고 규정했다. 전력 설비 공격이 발생한 날 독일 정부는 라이프치히-할레 공항에서 일어난 폭발물 드론 사건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했다. 지난달 4일 이 공항에 주기해 있던 안토노프항공 화물기 근처에서 폭발물을 실은 드론이 발견됐고 러시아 소행이 의심됐는데 공식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알렉산더 도브린트 내무장관은 “드론 부품과 폭발물, 기폭 장치 등이 러시아가 벌인 다른 하이브리드 작전에서 사용된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이미 알려진 것들이었다”고 했다. 독일 당국은 러시아와 연계된 벨라루스·라트비아 국적 용의자 2명도 특정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의도성이 다분한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소셜미디어에서의 친러시아 메시지 선동, 정체불명의 드론 비행 등 다양한 형태의 하이브리드 공격이 전개돼왔다. 이런 형태의 공격은 주로 우크라이나를 총력 지원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가입국 중 러시아와 가까운 중동부 유럽 또는 발트 국가에 집중됐다. 그런데 최근 독일이 핵심 타깃이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독일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미군이 주둔해 온 유럽 안보의 핵심 거점이다. 미군 유럽사령부와 아프리카사령부 본부가 슈투트가르트에 있고, 람슈타인 공군기지는 나토 공중 작전의 핵심 허브 역할을 한다.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병력·무기·군수 물자의 주요 이동·지원 거점도 독일에 집중돼 있다. 러시아 입장에선 독일의 군사·교통·에너지 인프라를 교란시켜 우크라이나 지원 능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독일 사회 내부에 전쟁 피로·불안을 확산시키는 일석이조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도이체벨레(DW)는 “러시아가 하이브리드 공격을 통해 미국에 이어 우크라이나의 두 번째로 중요한 지원국인 독일에서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독일의 국론 분열을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오른쪽)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U와 나토는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독일 국방장관 출신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긴급 회동했다. 폰데어라이엔은 “유럽인들은 러시아의 하이브리드 공격이 ‘뉴 노멀(새로운 일상)’이 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며 “일상적인 기반 시설을 러시아가 노리는 최전선 공격 목표로 간주하고, 이에 걸맞게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뤼터는 “러시아의 위협이 점점 더 무모해지고 있다”며 “이런 위협으로 유럽과 나토가 분열하거나,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라고 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의 군수 산업을 지원하는 1600여 개인·단체를 새로운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EU·나토와 파열음을 내던 미국도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매튜 휘태커 주나토 미국 대사는 “미국은 나토 영토에 해악과 혼란을 야기하려는 시도에 맞서 독일과 모든 동맹국과 연대한다”고 했다.

지구촌의 주요 전장(戰場)에서 하이브리드전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란도 미국을 대상으로 하이브리드전을 전개하고 있다. 미 NBC에 따르면, 최근 몇 주간 이란 연계 해커들은 미국의 상수도 시스템, 통신, 에너지 등 미 본토에 깔려 있는 인프라를 표적으로 삼아 해킹을 시도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7월 최소 7개 주에서 상수도 시스템이 사이버 공격을 받은 사건을 수사 중이다. 지난달 영국에서도 발전소 한 곳이 이란 연계 세력 추정 집단의 사이버 공격을 받아 나흘간 가동이 중단됐다./조선국제 

☞하이브리드전(Hybrid Warfare)

무기를 활용한 기존의 군사 공격 뿐 아니라 각종 비군사적 수단까지 동원해 유무형의 공격 전술을 혼합(hybrid)하는 현대전의 개념. 하이브리드전의 대표적인 비군사 수단으로는 사이버 공격, 인프라 파괴, 정보 탈취 및 교란, 허위 사실 유포 등을 통한 선거 개입 등이 꼽힌다.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인접한 자유 진영 국가를 상대로 한 하이브리드전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