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스웨덴 前총리가 탄 열차, 러 드론 공격 간발 차 피했다

폴란드로 넘어가고 수 분 뒤에, 국경 부근에 정차한 열차 타격
직접 공격 빗나갔거나, 일부러 직후에 '심리적 효과' 노린 듯
우크라 국영철도 "러시아 드론 위협 탓에 예정보다 일찍 출발"

1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잇는 야호딘-도로후스크 국경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기관차가 러시아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X
1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잇는 야호딘-도로후스크 국경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기관차가 러시아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X

13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영국과 노르웨이 전 총리 등 유럽 외교단이 탄 열차가 폴란드로 진입하고 수분 뒤에, 러시아 드론 수백 대가 우크라이나ㆍ폴란드 국경에서 불과 2㎞ 떨어진 곳에 정차돼 있던 열차를 강타했다. 이 열차는 우크라이나의 국경 전 마지막역인 야호딘 역에서 승객 대피 명령을 받고 정차해 있었다.

스웨덴 전 총리 칼 빌트, 영국 전 총리 보리스 존슨 등은 키이우에서 열린 유럽ㆍ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의 연례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폴란드~우크라이나를 잇는 이 철도 노선은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세계 각국 정상들이 키이우를 방문할 때 이용하는 노선이다. 이들 유럽의 전 총리 일행은 우크라이나 측이 특별히 마련한 전세 열차에 탑승하고 있었으며, 러시아 드론 공격 시점에 이미 국경을 넘어 폴란드 도시인 도로후스크 역에서 하차한 상태였다.

9월 13일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인근의 야호딘 철도역에서 러시아 드론 공격으로 손상된 우크라이나 기관차 모습./우크라이나 국영철도 우크르잘리즈니차 배포. AP연합뉴스
9월 13일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인근의 야호딘 철도역에서 러시아 드론 공격으로 손상된 우크라이나 기관차 모습./우크라이나 국영철도 우크르잘리즈니차 배포. AP연합뉴스

그러나 이 회의에 참석한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아직 폴란드로 넘어오지 않고 야호딘 역에 있을 때에 대피 명령을 받고 탑승했던 열차에서 내려 대피했다. 러시아 드론은 야호딘 역 인근에 정차해 있던 다른 열차를 타격했으며, 퍼트레이어스는 당시 현장 부근에 있었다. 드론 공격은 승객들이 모두 대피한 뒤에 발생해, 사상자는 없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오어진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오어진

퍼트레이어스는 성명을 내고 “이것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공포에 몰아넣고, 우크라이나 방문을 고려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려는 러시아의 확전 캠페인의 일부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빌트 전 스웨덴 총리는 “내가 탄 열차도 정차한 뒤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수 분 뒤에 위험이 해소됐다는 통보를 받고 계속 (폴란드 쪽으로) 이동했다”고 X에 썼다. 그는 “다친 사람은 없었고, 안전 시스템은 매우 훌륭했다”고 썼다.

우크라이나 철도공사 측은 빌트, 존슨 전 총리 일행이 탄 “열차는 러시아의 지속적인 공습 위협 탓에, 일정을 변경해 예정보다 일찍 역을 떠났다”고 밝혔다. 또 우크라이나 측 야호딘 역에 머물고 있던 열차 승객들에게는 러시아의 제트 추진 드론이 타격하기 15분 전 쯤에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푸틴이 어떤 뒤틀린 논리에 따라, 오늘 아침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기관차를 폭파했는지 모르겠다”며 “분명한 것은 이것이 우크라이나인들이 매일 겪는 무작위적이고 무의미한 공격, 심지어 민간 철도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존슨은 서방 국가들에게 “정신 차리고 우크라이나인들이 필요로 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제공하라”고 촉구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의 드론 공습 직후 안보 수뇌부의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켰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번 공격이 “푸틴의 공포가 EU와 나토의 문을 직접 두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의 국경 인근 한 주유소도 이번 드론 공격으로 불탔다.

우크라이나 국영철도 측은 전날에도 서부 도시 루츠크와 수도 키이우 인근 철도역이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최근 수주간 우크라이나의 민간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여름 동안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의 에너지 시설과 물류 거점을 지속적으로 공격한 데 대한 반격이었다.

러시아는 12일과 13일 오전 사이에 무려 863대의 드론을 발사해 우크라이나 역과 주유소 등 인프라를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러시아가 토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사이 드론 863대를 발사했다고 밝혔다. 하루 사이에 400대가 넘는 드론이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것은 7월 초 이후 처음이다.

러시아가 유럽 전직 고위 관리들의 이동을 알고 일부러 이들이 지나간 직후에 ‘심리적 효과’를 노려 공격했는지, 철도 인프라 자체를 공격했는데 드론 공격 시점이 유럽 외교단 일행의 통과 시점과 우연히도 비슷하게 맞았는지, 이들이 탄 열차를 직접 노렸는데 놓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서부의 “철도 인프라”를 공격했다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 국영철도 측은 “이번 드론의 목표는 외교 사절단 열차였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밝혔다.

존슨, 빌트 등의 유럽의 고위 전현직 외교ㆍ안보 관리들은 키이우에서 열린 국제 안보ㆍ외교 포럼인 ‘얄타 유럽 전략(YES)’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 회의는 2004년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처음 열렸으며,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뒤에도 상징성을 위해 이름을 유지한 채 키이우에서 열리고 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