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청춘들 입에서 "진짜" "언니"…뉴욕타임스도 주목한 '한본어'

3줄 요약
2018년 K팝 인기와 코로나 팬데믹 계기로 확산
일제강점기 한국어 억압과 대비되는 역사적 변화
친구들 사이에서 쓰는 격의 없는 표현 방식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 인근 한인타운. /뉴스1
일본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 인근 한인타운. /뉴스1

“한글이 적힌 라면 봉지. 남자 주인공이 한국어를 하는 TV 드라마. 광고 모델이 ‘괜찮아’라고 말하는 차(茶) 광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현지 시각) 일본에 번지는 ‘한본어’ 현상을 소개하며 기사 첫머리에 나열한 풍경이다. 한국에서의 풍경 같지만 모두 일본에서 나온 사례다. K팝과 드라마를 즐기던 일본 젊은 층이 이제 한국어 표현까지 일상에 끌어들이는 모습을 미국 유력지가 조명한 것이다.

NYT는 이날 ‘일본의 새로운 유행어, 뜻밖의 기원은 한국’이라는 기사에서 일본 대중문화와 광고, 일상 대화로 확산하는 한국어 표현을 소개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합친 ‘한본어’는 일본어 대화에 한국어 단어나 이를 조금 변형한 표현을 섞어 쓰는 것을 뜻한다.

도쿄에 사는 대학생이자 K팝 팬인 다카마쓰 모에카(21)는 “일상 대화에서 ‘진짜’나 ‘미안해’를 자주 섞어 쓴다”고 NYT에 전했다. 한국 음식점과 화장품 가게가 모여 있는 도쿄 신주쿠 거리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지만,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괜찮아’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고 했다.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해진 시점으로는 2018년이 꼽힌다. 방탄소년단(BTS)이 앨범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를 내고, 블랙핑크가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하던 때다. 사이버한국외대 사사 히로코 교수는 일본의 K팝 팬들 사이에서 “한국어 단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직접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도 확산의 계기가 됐다. 집에 머물며 한국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이 늘면서 노래와 드라마 속 표현이 일상으로 옮겨왔다. 특히 남성이 친근한 연상의 남성을 부르는 ‘형’, 여성이 연상의 여성을 부르는 ‘언니’ 같은 호칭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어에는 이와 쓰임이 정확히 일치하는 호칭이 없다는 설명이다.

일본 간사이대의 최은경 교수는 NYT에 “한국계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됐다”며 “한국어 사용은 K팝이나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두 언어의 발음 체계가 비슷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관광객이 활발하게 오가는 점도 언어의 문턱을 낮추는 배경으로 꼽혔다.

NYT는 이를 일제강점기와 대비되는 변화로 봤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어는 공적 지위를 빼앗겼고, 공문서와 교과서에는 일본어 사용이 강요됐다. 한국어 신문이 폐간되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체포된 바 있다. 그런데 이처럼 한국어를 억압하던 나라에서 이제 젊은 세대가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즐겨 쓰는 현상이 생긴 것은 그만큼 한국 문화의 세계적 매력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다만 아직 한본어가 일본 사회 전체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도쿄의 한국어학원에서 일하는 후지사와 마야는 “철저히 친구들 사이에서 쓰는 격의 없는 표현 방식”이라고 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