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歌는 시시합니다"... 잉글랜드 金 시상식에 튼 노래

잉글랜드 대표팀, 2026 커먼웰스 게임에서 국가 대신 가요 채택
"국가는 너무 단조롭고 잉글랜드적이지 않아"
일각에선 스포츠용 국가 따로 만들자는 주장도

잉글랜드의 선수가 2026 커먼웰스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잉글랜드의 선수가 2026 커먼웰스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영연방 국가들의 ‘올림픽’, 커먼웰스 게임에서 때아닌 ‘국가(國歌)’ 논란이 일었다. 영국 구성국, 특히 가장 주류인 잉글랜드마저도 경기 전 영국 국가인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가 아닌 다른 노래를 틀고, 심지어 스포츠 경기용 노래를 새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빗발치고 있는 탓이다.

지난달 23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개막한 이 대회에서 잉글랜드 선수들은 금메달을 딴 뒤 시상대에서 영국 국가인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가 아닌 ‘예루살렘(Jerusalem)’이라는 곡을 들었다. 1804년 윌리엄 블레이크가 쓴 시를 1차 세계대전 때 애국적인 노래로 만든 곡이다. ‘잉글랜드의 푸르고 아름다운 땅에 예루살렘을 건설할 때까지’ ‘예루살렘은 어둡고 사악한 공장 위에 세워졌는가’ 등 영국적인 내용이 많다. 이 곡은 이미 과거부터 잉글랜드 테스트 크리켓 대표팀의 공식 주제가로 쓰이는 등 일부 종목에서는 비공식 국가처럼 자리 잡아왔다.

다소 황당한 이 사태는 잉글랜드 팬들 사이에 쌓인 묘한 불만 때문이다.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는 곡의 음정이나 템포가 너무 단조로워 대형 스포츠 이벤트 때 부르기는 다소 시시하다는 것이다. 또 국왕과 국가를 지켜달라는 단순한 내용의 가사에서도 큰 의미를 못 찾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영국 정체성 전문가인 마이크 케니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는 감동적이거나 선수들을 고무시키지 않는다”며 “영국 스포츠계에선 어떤 곡이 국가여야 하는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고 했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2026 커먼웰스 게임에서 메달을 딴 뒤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잉글랜드 선수들이 2026 커먼웰스 게임에서 메달을 딴 뒤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잉글랜드만의 특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엔 영국이나 잉글랜드 이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 다른 영국 구성국인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의 꽃(Flower of Scotland)’, 웨일스는 ‘우리 선조들의 땅(Land of My Fathers)’ 등 제목이나 가사부터 국가 정체성이 드러나는 주제가를 채택하고 있다. 월드컵 같은 큰 경기에선 영국 국가 대신 이 음악이 나온다. 케니 교수는 “오히려 예루살렘이 현재 국가보다 분명히 잉글랜드적이고, 산업혁명이라는 조국의 근본과 전통을 강하게 반영한 것 같다”고 했다.

잉글랜드는 영국의 정치·경제적 중심지인 수도 런던이 있는 곳이다. 국민도 영국인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 구성국이 본인들만의 정체성이 유독 강하다 보니 잉글랜드인도 잉글랜드만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10년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선 잉글랜드 축구 팬들이 가장 원하는 국가 1위에는 예루살렘이 뽑혔고,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는 최하위(3위)에 그쳤다. 2016년엔 영국 의회에서 잉글랜드만의 고유한 스포츠 국가를 제정하자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라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번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 대표팀은 경기 전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를 불렀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