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빠져나와도 살 사람이 없다?"… 석유 시장 미스터리

카타르·ADNOC 원유 할인
1800만 배럴 해상 대기
中 수입↓·대체원유↑
비축 재개 여부가 관건

미국과 이란이 다시 무력 충돌을 벌이기 전까지 20일 넘게 호르무즈 해협이 재개방되면서 막대한 양의 석유가 시장에 풀렸지만, 중동산 원유 수요는 예상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일부 중동 산유국들은 자국산 원유 할인 판매에 나섰다.

21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 디바 알푸자이라 해안 인근 호르무즈 해협 입구에서 목격된 화물선들 / EPA=연합
21일(현지 시각) 아랍에미리트 디바 알푸자이라 해안 인근 호르무즈 해협 입구에서 목격된 화물선들 / EPA=연합

21일(현지 시각) CNN은 “호르무즈 해협이 대부분 다시 개방된 짧은 3주 동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며 “페르시아만에 갇혀 있던 2억 배럴 이상의 원유가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져 나왔지만, 구매자들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데이터업체 크플러(Kpler)에 따르면 카타르 국영 석유기업 카타르에너지(Qatar Energy)와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는 동남아시아 구매자를 확보하기 위해 원유 가격을 배럴당 6~9달러 할인했다. 현재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비(非)이란산 원유 약 1800만 배럴이 페르시아만 밖에서 유조선에 실린 채 매수자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로이터통신도 이달 초 “산유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생산과 수출을 늘리면서 걸프 지역의 원유가 아시아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며 “ADNOC은 어퍼 자쿰(Upper Zakum) 원유를 중국 둥밍석유화학과 성훙석유화학에 각각 판매했는데, 거래 가격은 푸자이라 FOB(본선인도조건) 기준 두바이유보다 배럴당 7~9달러 낮았다”고 전했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석유 시장은 극심한 혼란을 겪었지만, 시장은 전쟁이 5개월간 이어지는 동안 공급 충격에 점차 적응한 모습이다. JP모건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원유 수요는 전쟁 발발 당시보다 하루 약 400만 배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원유 수요가 저조한 이유 중 하나로는 원유를 처리할 정제 시설의 부족이 꼽힌다. 전쟁 기간 이란이 중동 지역 정유시설 30곳을 공격하면서 정유시설은 이미 최대 가동 상태에 이르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특히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수입량을 줄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 해상 데이터 업체 시그널 오션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원유 수입은 전쟁 기간 하루 1200만 배럴 이상에서 800만 배럴 이하로 급감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중국이 대규모로 원유를 비축한 영향이다. 이 때문에 전쟁 기간 중국의 실제 원유 수요 감소는 하루 약 120만 배럴 수준이며, 수입 감소 규모인 약 500만 배럴 전체가 실제 수요 감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시그널 오션 리서치는 분석했다.

대체 공급원이 늘어난 점도 중동산 원유 수요를 낮춘 요인으로 분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등 미주 산유국들이 생산과 수출을 늘리면서 대서양권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원유 수출은 하루 약 350만 배럴 증가했다. 러시아 역시 전쟁 이후 미국의 제재 해제로 원유 수출길이 열리면서 구매자들이 중동산 원유를 서둘러 확보할 필요성이 낮아졌다.

쿠웨이트 미나 알아흐마디 정유소 전경 / AP=연합
쿠웨이트 미나 알아흐마디 정유소 전경 / AP=연합

미국과의 휴전으로 한시적으로 수출길이 열렸던 이란산 원유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몇 주 동안 이란은 7000만 배럴의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나 이란산 원유를 구매한 국가는 중국뿐이었고, 중국마저 수입량을 크게 줄였다. 중국의 지난달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하루 약 150만 배럴에서 63만 배럴로 급감했다.

이란산 원유는 미국의 제재에 따른 결제·운송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데다, 중국 정유사들이 다른 지역에서 대체 원유를 확보할 수 있어 수요가 제한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로이터통신은 중국 국영 정유사들이 이란산 원유 수입 재개를 검토하고 있지만, 대체 원유 공급이 충분하고 중국 내 연료 수요가 감소하면서 구매 관심은 제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란 석유부 국장 출신 에너지 전문가 마무드 카가니는 이란 매체 아르망멜리와의 인터뷰에서 “수출 경로가 일시적으로 열렸다고 해서 이란산 원유가 세계 시장에 실질적으로 복귀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60일간의 제재 면제 조치가 단기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이란산 원유의 시장 복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원유 비축량을 다시 늘리기 시작하면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원유 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현재 중국은 약 117일치 수요에 해당하는 19억 배럴의 원유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전략비축유 역시 198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정부가 높은 수준의 비축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비교적 이른 시일 내 원유 수입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캐피탈 이코노믹스(CE)의 선임 원자재 이코노미스트 키어런 톰프킨스는 “수요가 회복되려면 구매자들이 미국과 이란 사이에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만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졌다고 믿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