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 민간까지 삐걱… 4명 중 1명 비자 거부 당해

작년 24.7%로 10%p 가까이 급등
일본은 거절률 5.7%로 소폭 감소

지난 9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비자를 발급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 /뉴스1
지난 9월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시민들이 미국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줄을 선 모습. 우리나라 국민이 신청한 미국 방문 비자(B1·B2) 거절률이 지난해 급등해 24.73%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4명 중 1명은 비자 발급이 거절되는 셈이다. 이는 일본·영국·프랑스 등 주요 동맹국은 물론, 중국보다도 높은 수치다. /뉴스1

지난해 한국 국적자의 미국 방문 비자(B1·B2 비자) 거절률이 급증해, 우리 국민이 신청한 방문 비자 4건 중 1건이 거절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우리 국민에 대한 미국의 방문 비자 거절률은 일본·독일·프랑스 등 다른 동맹국은 물론, 미국이 적대국으로 분류하는 중국보다도 높았다.

외교부가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와 미 국무부 통계를 종합하면, 지난해 우리 국민이 신청한 미국 방문 비자의 최종 거절률은 24.73%로 2024년(14.97%)에 비해 9.76%포인트(p) 증가했다. 2021~2024년 우리 국민에 대한 미국의 방문 비자 최종 거절률은 14~18% 사이를 오갔는데, 지난해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외교부는 “미국 내 이민 문제 등이 비자 심사 정책 강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문 비자 최종 거절률은 2024년 5.76%에서 지난해 5.68%로 오히려 낮아졌다. 중국에 대한 비자 거절률도 25.37%에서 20.21%로 낮아졌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정치권에선 “유독 우리나라에 대한 비자 거절률만 증가했다면, 경색된 한미 관계가 영향을 끼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한미 간에는 관세와 안보 협상이 장기간 이어졌고, 쿠팡 개인 정보 유출을 두고도 이견이 있었다. 올봄부터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구성 우라늄 농축 시설’ 발언으로 미국이 정보 공유를 제한 중이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워싱턴에 파견하려던 직원들과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미국 비자 발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김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우리 정부의 대미 외교·국방 정책과 한·미 관계의 변화가 미국의 비자 발급 거절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아닌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비자 퇴짜’ 美동맹 중 최고… “한미 현안이 영향 끼친 듯”

지난해 미국의 한국 국적자에 대한 방문 비자(B1·B2) 최종 거절률이 24.73%까지 급증하면서, 그만큼 더 많은 우리 국민이 무역 거래나 가족 방문 등에 불편을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방문 비자는 이민 목적 없이 미국을 방문할 때 가장 흔히 신청하는 비자다.

B1 단기 상용 비자는 무역 계약 협상, 해외 거래처에 수출한 장비의 보수·수리·교육 등에 주로 필요하다. B2 단기 방문 비자는 관광, 치료, 친지 방문 등에 쓰인다. 90일 이상 장기 체류가 필요하거나 이란·쿠바·북한 등을 방문한 적 있어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ESTA)을 이용할 수 없는 국민들이 주로 신청한다. 미국의 우리 국적자 대상 방문 비자 거절률은 2021년 18.03%, 2022년 17.38%, 2023년 14.44% 등 10%대 중후반 수준을 유지해 왔다.

외교부는 미국 방문 비자 거절률이 증가한 데 대해 “미국이 비자 발급 거절 사유를 공개하고 있지 않아 정확한 사유 파악은 어렵다”면서도 “미국 내 이민 문제가 첨예한 국내 정치 현안이 되면서 비자 심사 정책 강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가 미 국무부 영사국 통계를 확인해본 결과, 미국의 동맹국으로 ESTA 프로그램이 있는 영국(20.44%), 독일(12.22%), 프랑스(9.67%), 일본(5.68%) 등의 미국 방문 비자 최종 거절률은 지난해 우리(24.73%)보다 훨씬 낮았다. 영국은 2024년 대비 2.41%p 늘었고, 프랑스도 1.17%p 소폭 증가에 그쳤다. 대만은 2024년 대비 4.23%p 증가한 9.45%였다. 일본(-0.08%p), 뉴질랜드(-0.85%p), 노르웨이(-3.26%p) 등은 오히려 비자 발급 거절률이 감소했다.

미국과 비자 면제 협정을 맺지 않은 중국(20.21%), 인도(22.04%), 베트남(22.08%) 국적자에 대한 미국 방문 비자 최종 거절률도 우리 국민에 대한 거절률보다 낮았다. 중국 역시 2024년보다 거절률이 5.16%p 줄어들었다. 한국 국적자에 대한 방문 비자 거절률만 급격히 높아진 것이다.

한국인의 미국 방문 비자 발급 건수 역시 2022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2024년 1만5508건을 기록했다가, 지난해에는 1만2226건으로 되레 줄었다. 미국 이민·비자 발급 업무를 하는 남종범 미국 변호사(법무법인 에스엔)는 “대기업 직원의 비자 발급엔 큰 문제가 없지만, 일반인들의 비자 신청은 거절되는 경우가 늘었다”면서 “심사 단계에서 요구하는 서류의 양도 늘었고, 비자 발급 거절 이력이 있는 경우 재신청해도 웬만하면 비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미국이 우리 기업의 현지 파견 인력에 대한 단속·심사를 강화한 것이 비자 거절률 급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작년 9월 4일 미국 이민 당국은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을 체포·구금했다.

미국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노동법을 우회하기 위해 B1·B2 비자 등을 이용해 인력을 미국에 파견하는 경우가 있다는 의구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미국 정부의 통계는 매년 10월 시작하는 ‘회계연도’를 적용하며, 지난해 비자 거절률 통계는 2024년 10월~2025년 9월의 거절률을 집계한 것으로 9월 초 있었던 조지아주 사건의 결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난해 7월 내란 특검팀이 주한미군에 사전 통보 없이 오산 공군기지를 압수수색해서 미군이 항의했던 일 등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과 더불어, 주한미군 기지 압수수색 논란 등 지난해 있었던 각종 한미 현안이 비자 발급율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최근 수면 위로 나타난 한미 간 외교 갈등에 대해 정부가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하는 이유가 비자 거절률로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조선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