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알래스카 '투자쇼'… 김정관 "합의 벗어나 유감"

"한국 500억달러 투자" 일방 발표
李대통령 "상업성이 전제 조건"
투자 여부·규모 모두 확정 안돼

3줄 요약
공식 문서에는 투자 확정 아닌 검토 착수
막대한 가스관 건설비와 미확정 구매 약정이 난제
한국 부담 방식과 투자 주체도 아직 미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자금으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며 댄 설리번 알래스카 상원의원(공화당)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 트럼프는 “설리번 의원은 이 사업을 거의 20년간 추진해왔다”고 추켜세우며 11월 중간선거에서의 지지를 호소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 투자 자금으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며 댄 설리번 알래스카 상원의원(공화당)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 트럼프는 “설리번 의원은 이 사업을 거의 20년간 추진해왔다”고 추켜세우며 11월 중간선거에서의 지지를 호소했다.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1일 소셜미디어에 “알래스카 LNG 사업은 상업성이 확인되고 대한민국 법 절차에 부합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working’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working’은 사업성 검토 실무작업을 뜻하는 것으로, 투자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음을 돌려 말한 것으로 해석됐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이날 브리핑에서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다는 전제에서만 추진한다는 게 한미 정부가 합의한 내용이었다”라며 “합의보다 더 나간 데 대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게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한미 양국의 공식 문서에서도 알래스카 LNG 사업은 투자 확정이 아닌 ‘검토 착수’ 단계로 명시됐다. 이 사업은 막대한 건설비가 드는 데다 LNG 판매처도 확보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발표대로 투자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은 한국 측 우려를 이해한다며, 양국이 잘해서 사업이 성공하도록 노력하자는 취지로 답했다”고도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0일(현지 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텍사스 엔시날 가스발전소 건설, 대형 원자력발전소 8기 건설, 알래스카 LNG 개발 등 한국의 대미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러트닉 장관은 텍사스 가스 발전소에 220억달러, 원전 8기 건설에 1200억달러,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에 500억달러가 넘는 금액이 투자될 것이라고 했다. 또 오하이오·테네시·사우스캐롤라이나·켄터키에 원전이 건설될 것이라고도 언급했다. 한국이 대미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약속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가운데 조선 분야 1500억달러를 제외한 2000억달러의 활용 계획을 제시한 셈이다. 원전과 관련해서도 이 대통령은 “원전 역시 구체적 발전소 단위로 상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알래스카 LNG, 한미 공식 문서엔 금액 없이 ‘검토 착수’

“알래스카 LNG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하루 약 1억1300만㎥(40억 입방피트)의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을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30일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화려한 수사(修辭)와는 달리 동토의 땅에 가스관을 놓고 액화시설을 지어 아시아로 수출하려면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부담은 건설비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알래스카 프로젝트에 가스관과 액화시설 등을 포함한 전체 사업비는 445억~545억달러(약 60조~74조)로 추산된다. 올해 한국 정부 본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남북 길이 1300㎞에 이르는 가스관 건설비만 132억~169억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계 주요 LNG 사업 중에서도 가장 긴 축에 속한다”고 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사업비를 “540억달러”라고 못 박았지만, 러트닉 장관은 “500억달러가 넘는 규모”라고 뭉뚱그렸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미국 측이 지난달 중순에는 670억달러라고 했는데, 100억달러가 넘는 사업 규모가 불과 며칠 사이 달라졌다”며 “이는 프로젝트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했다

또 1300㎞ 구간 내에 포함된 야생 습지나 동물 보호구역에서 환경 보호 조건을 지키며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도 변수다. 인력도 문제다. 일부 구간은 땅이 얼어 있는 시기에 공사해야 하는 등 작업 여건이 까다롭고, 짧은 기간에 배관공, 용접공과 같은 숙련인력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 알래스카주 노동부는 지난 8월 앞으로 이 사업이 본격화하면 최대 동시 근무 인력이 6600명 필요하지만 현지 노동력과 인력 양성 규모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알래스카 LNG 사업이 최근 10년 가까이 에너지 업계의 관심을 받아왔지만 표류했던 것도 이런 난관들이 겹겹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알래스카 사업의 이같은 불확실성을 우려해 ‘한미 투자 운영계약’에 투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는 ‘안전장치’를 만들어놨다고 설명했다. 텍사스 발전소, 원전 등 개별 사업을 따로 계산하지 않고 전체 투자금과 수익을 하나로 묶어, 한국이 모든 사업의 원금과 약정 이자를 회수할 때까지 각 사업의 수익을 한미가 5대5로 나누는 방식이다. 만약 알래스카에서 손실이 생기더라도 다른 사업의 수익으로 일부 메울 수 있는 구조다. 연간 투자액은 200억달러로 제한했고 사업을 청산할 때도 남은 재산에서 한국의 원리금을 먼저 돌려받는다.

다만 전문가들은 투자 사업들이 남는 장사인지만 따져서는 대미 투자의 득실을 제대로 계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에너지와 안보 협상 등 여러 방면에서 실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사업 기간 동안 미국과 한국 모두 정권이 네다섯 번은 바뀐다. 지금 가정한 정치 환경이나 외국 기업에 대한 대우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며 “기본적인 상업성 테스트를 통과하면 쿠팡 문제, 추가 관세 부과, 원자력협정 개정처럼 지금 거둘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얻어내는 게 훨씬 확실하다”고 말했다. 정철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이번 투자는 주로 최근 들어 각광받는 에너지 분야에 집중돼 있다”며 “에너지 산업의 무게가 커지는 가운데 양국 협력이 확대되는 건 공급망 안정과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