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빠진 종전 협상' 美서 반발 확산

"이럴거면 왜 전쟁 했나" 비판에
트럼프 "위대한 합의 아니면 노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뉴욕의 한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뉴욕의 한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의 종전(終戰) 합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미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럴 거면 왜 전쟁을 시작했냐”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양국은 우선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고 핵심 쟁점인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 고농축 우라늄 반출·폐기 등에 대해서는 향후 30~60일 동안 협상을 이어간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체결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대(對)이란 군사 작전을 시작하며 ‘이란의 임박한 핵 위협’을 명분으로 들었는데, 중요 과제를 뒤로 미루는 듯한 모습에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쇄도하는 것이다. 합의를 곧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말 일정을 취소하고 속도전을 벌이던 트럼프는 24일(현지 시각)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아직 이란과의 협상이 끝나지 않았다. (협상팀에) 서둘러 합의에 도달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는 25일에는 “이란과의 협상은 위대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면 노딜”이라며 “실패한 오바마 행정부의 협상과는 정반대”라고 했다. 트럼프는 합의가 불발되면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고 강력한 공격이 재개될 것”이라고 했다.

◇前참모들도 “오바마 합의와 똑같다”… 코너 몰린 트럼프

뉴욕타임스(NYT)는 24일 한 당국자를 인용해 양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고 이란이 보유한 고농축 우라늄을 폐기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과 대화 의제에 상당 부분 합의에 도달했다”고 했다.

다만 이란은 30~60일간 휴전을 연장하면 그 기간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무료 개방’해줄 수 있지만, 전쟁 이전의 자유 통항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호르무즈 지렛대’의 위력을 확인한 이란이 해협 통제권 영구화를 시도할 것이란 얘기다. 이란 외무부는 “호르무즈 해협 안전 통과를 위한 서비스 비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미 공화당 소속인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장은 성명을 내고 “대통령이 종이 조각보다 가치 없는 협상을 추진하라는 잘못된 조언을 받고 있다”며 “우리의 유능한 군대가 이란의 재래식 군사 능력을 완전히 파괴한 뒤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해야 한다. 이란이 선의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 믿고 추진하는 60일 휴전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對)이란 강경파이자 트럼프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도 이번 합의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테러 능력으로 위협할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셈이라며 “대체 왜 전쟁을 시작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고 했다. 이란의 압박에 미국이 굴복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사일 이미지 올리자… 이란, ‘무릎 꿇은 로마 황제’ 맞대응  미국과 이란 간 종전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양측이 소셜미디어를 통한 ‘디지털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위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합성 이미지로, 미사일에 ‘이 사안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의 협상 주도권을 과시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같은 날 이란 외무부도 X에 고대 로마 황제들이 페르시아 황제에게 굴복하는 장면이 담긴 부조 이미지를 게시하며 맞대응했다(아래쪽). /트루스소셜·X
트럼프가 미사일 이미지 올리자… 이란, ‘무릎 꿇은 로마 황제’ 맞대응 미국과 이란 간 종전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양측이 소셜미디어를 통한 ‘디지털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위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 트루스소셜에 올린 합성 이미지로, 미사일에 ‘이 사안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의 협상 주도권을 과시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같은 날 이란 외무부도 X에 고대 로마 황제들이 페르시아 황제에게 굴복하는 장면이 담긴 부조 이미지를 게시하며 맞대응했다(아래쪽). /트루스소셜·X

선(先) 호르무즈 개방, 후(後) 핵 협상을 하면서 핵 포기 반대급부로 이란의 제재를 해제해주는 방안에 대해서도 “오바마 때와 다를 게 뭔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트럼프 행정부 1기 핵심이었던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대로라면 이란이 중대한 승리를 거두고, 다시 핵 개발의 길로 돌아가 세계 테러를 지원하고 자국민을 탄압할 것”이라고 했고, 마이클 플린 전 보좌관은 “이란은 예전에도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했는데 이제 와서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라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도 현재 이란과 논의되고 있는 협상안이 오바마 행정부의 협상안과 똑같다며 “역내 우리 동맹을 위협할 수 없게 이란의 역량을 충분히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때인 2015년 서방 제재 완화를 대가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개발을 제한하는 이른바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JCPOA)’을 체결했다.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를 ‘최악의 합의’라 강력 비난하며 집권 1기 때인 2018년 이를 파기했다.

트럼프는 개전 연설 당시 “이란은 핵을 절대 가질 수 없다”는 전쟁 목표를 공언했지만 현재는 호르무즈 개방 카드를 지렛대로 내세운 이란의 ‘추후 단계적 핵 협상’ 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이고 있다.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은 CNN에 “대통령이 바보 취급을 당하고 있다”며 “이란에 더 극단적 정권이 들어서게 하고, 미국을 전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고 했다. 같은 당 크리스 밴 홀런 의원은 지금처럼 협상하면 “전쟁 이전 상태로의 복귀”라고 했다. 휴전 기간 이란의 합의 이행 여부를 확신할 수 없고, 핵물질 사찰·처리 방법 등 난제를 놓고 이란이 과거와 같은 ‘침대 축구’ 전술을 구사한다면 미국이 끝을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판이 이어지자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비판만 하는 패배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썼다.

이스라엘과 중동국도 트럼프의 ‘속도전’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핵문제 추후 협상’이라는 현 MOU 논의가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안보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4일 소셜미디어에 “이란과의 어떤 최종 합의도 반드시 핵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이는 이란의 핵농축 시설을 해체하고, 농축된 핵 물질을 자국 영토에서 반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조선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