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꽂은 보수 대법관, 소신 판결로 트럼프에 '비수'
에이미 코니 배럿 美 대법관
상호관세 이어 출생 시민권 제한도 위헌 결정
우편투표 판결도 진보 대법관 편에
보수 진영 "변절자" "최악의 인선" 맹비난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인 강경한 이민 정책·우편투표 폐지·글로벌 상호 관세에 대해 줄줄이 제동을 걸자 보수 진영에서 에이미 코니 배럿(54) 대법관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트럼프가 대법원 이념 성향을 보수 완전 우위로 굳히기 위해 배럿을 발탁했는데, 주요 판결에서 잇따라 진보 대법관들과 한편에 서면서 트럼프에게 사실상 비수를 꽂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였던 2020년 대법관에 지명된 배럿은 가장 늦게 대법원에 합류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보다도 두 살이 어린, ‘최연소 대법관’이다.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트럼프가 지난해 발동한 출생 시민권 제한 행정명령에 6대 3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현재 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 6대 진보 3으로 구성돼 있지만, 배럿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 브렛 캐버노 대법관과 함께 진보 대법관들과 같은 위헌 편에 섰다. 대법원은 전날에는 선거일 이후 도착하는 우편투표를 유효표로 집계하는 일부 주의 선거 제도의 효력도 5대 4로 인정했다. 선거 당일 현장 투표의 효력만 인정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쐐기를 박은 판결이다. 배럿은 다수 의견서를 직접 작성하고 “법에는 투표용지 접수 마감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다. 앞서 배럿은 지난 2월 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에 의거해 교역 상대국에 상호 관세를 물리는 것은 위법하다고 6대 3으로 판결할 때도 ‘위헌’ 쪽에 섰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법관이 항상 공화당 행정부에 유리하게 판결하지는 않는다. 다만 배럿의 경우 로스쿨 교수였던 자신을 트럼프가 연방 법관으로 발탁한 데 이어, 대법관으로까지 끌어올려줬다는 점 때문에 친트럼프 인사들의 반발이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메긴 켈리 전 폭스뉴스 진행자는 라디오 방송에서 “배럿은 변절자다. 끊임없이 진보 진영 편을 들고 있다”고 했다. 보수 논평가 맷 월시는 X에 “배럿은 결국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채용이었다. 최악의 인선”이라고 썼다. 낸시 메이스 공화당 하원의원도 “배럿을 대법관직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배럿은 ‘진보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후임으로 지명됐다. 2020년 9월 긴즈버그가 87세에 지병으로 숨지자, 트럼프는 8일 뒤 연방 항소법원 판사였던 배럿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이 지명에 논란도 적지 않았다. 대법관 지명권은 현직 대통령에게 있지만,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를 한 달 반 앞두고 있었고, 긴즈버그는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명했기 때문이다. 인선을 서두르지 말고 차기 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여성 대법관 후임을 여성으로 채운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배럿의 지명을 강행했다. 이 인사로 보수 5, 진보 4로 보수 박빙 우위였던 대법원의 이념 지형은 보수 6, 진보 3으로 보수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졌다. 당시 종신직 대법관을 맡기에 배럿이 너무 젊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낙태를 반대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입양아와 다운증후군 환자를 포함해 일곱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보수층에서 지지를 얻었다.
배럿은 노트르담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하고 앤터닌 스칼리아 전 대법관 밑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 모교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하다 2017년 트럼프에 의해 연방 항소법원 판사로 발탁됐고, 3년 만에 대법관이 됐다. 트럼프가 2018년 취임 후 첫 대법관 인사로 브렛 캐버노 대법관을 지명할 때도 배럿을 검토했지만 “긴즈버그 후임으로 남겨두겠다”고 말할 정도로 배럿을 눈여겨봤다. 그만큼 배럿에 대한 트럼프의 감정이 남다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