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홀린 듯 따라 부르는 해괴한 영상, 보게 놔둬도 될까요?"
[아무튼, 주말]
Z·알파 세대에서 유행
'이탈리안 브레인롯' 밈

초등학교 3학년 외손녀를 돌봐주는 김영희(68)씨는 얼마 전부터 외손녀가 푹 빠져 있는 “해괴망측한 동영상”을 계속 보게 해도 될지 고민이다.
“파란 운동화를 신고 해변을 걸어다니는 상어, 악어 머리를 한 폭격기, 몸통이 바나나인 고릴라 등 요괴 같은 것들이 등장해요. 뜻을 알 수 없는 가사가 묘한 멜로디에 맞춰 흐르고요. 외손녀는 주문을 외우듯 따라 부르며 홀린 듯 영상을 시청합니다. 뭔지 모르겠고 왠지 불안해서 ‘보지 말라’고 하면 ‘학교와 학원 친구들도 다 본다’네요.”
여기서 뜻을 알 수 없는 가사란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침판지니 바나니니’ ‘퉁 퉁 퉁 퉁 사후르’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 같은 것들이다. 김씨를 걱정하게 만든 정체불명의 영상은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 올해 초 시작된 밈(meme·인터넷 유행)이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와 2010년대 초반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 그러니까 지금 초등학생부터 중고교·대학생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다.
브레인롯(Brainrot)은 직역하면 ‘뇌가 썩는다’로, 은어 ‘뇌절’에 가깝다. 맥락 없는 영상을 생각 없이 계속 보게 된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어처럼 들리는 엉터리 이름과 가사가 붙는다고 해 ‘이탈리안 브레인롯’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밈이 대부분 그렇듯, 언제 누가 유행시켰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챗GPT 등 생성형 AI를 이용해 재미 삼아 시도한 놀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과 온갖 사물, 과일, 음식을 아무렇게나 합성해 세상에 없는 이미지를 창조했다. 아무 뜻이 없지만 듣기에는 그럴싸한 이탈리아어로 들리는 이름도.
최초의 이탈리안 브레인롯 캐릭터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는 그렇게 탄생했다. 파란색 스니커즈를 세 발(지느러미)에 신고 해변을 배회하는 상어. 기괴하지만 본 적 없는 화려하고 강렬한 이미지에 AI가 음률만 맞춰 만들어낸 장난이지만, 머리를 떠나지 않는 강력한 중독성을 지닌 이름이 결합한 밈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를 타고 확산했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이 인기를 얻자 다른 캐릭터 수십 가지가 생겨났다. 폭격기 몸통에 악어 머리를 가진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 야구 방망이를 손에 든 나무 막대 ‘퉁 퉁 퉁 퉁 퉁 퉁 퉁 퉁 퉁 사후르(정식 이름은 ‘퉁’이 9번 들어가지만 흔히 3~4번으로 줄여 부른다)’가 ‘트랄랄레로 트랄랄라’와 함께 이탈리안 브레인롯을 대표하는 캐릭터들. AI로 손쉽게 창작할 수 있기에 캐릭터가 빠르게 늘었고 오늘도 생성 중이다.

이 캐릭터들은 각자 독특한 설정까지 부여받고 있으며,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하나의 밈 세계관으로 확장하고 있다. ‘트랄랄레로 트랄랄라’는 파도를 조종할 수 있으며 고도의 달리기·도약 능력과 강력히 무는 힘을 지녔고,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는 하늘을 날며 폭탄을 투하하는 무시무시한 괴수라는 식이다.
SNS에는 ‘트랄랄레로 트랄랄라와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같은 영상 콘텐츠도 넘쳐난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각 캐릭터의 능력을 분석하거나, 어떤 캐릭터가 이탈리안 브레인롯 최강자일지 진지하게 토론한다. 수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만화에서 출발한 수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서로 힘을 합치거나 대결하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단순한 문화 현상에 그치지 않고 암호 화폐 ‘밈코인’으로도 연결된다. ‘트랄랄레로 트랄랄라’ 이름을 딴 밈코인이 발행돼 한때 1만7000%나 급등했다. 특정 밈이 유행하면 관련 밈코인이 발행된다. 밈코인은 기술력 없이 밈의 인기만으로 빠르게 주목받으며 가격이 오른다. 투자자들은 단기간에 차익을 실현한다. 주식으로 따지면 테마주 같아서 유통 규모가 적고 가격 변동성이 커 손해 보기 쉽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생성형 AI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결합해 하나의 영상이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재미를 준다”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Z·알파 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이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조합해 즐기는 데 거리낌이나 두려움이 없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가볍게 웃고 즐길 콘텐츠일 뿐, 우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