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트럼프와 한 조가 될까... 총수들 잘 쳐도 못 쳐도 고민

[韓美 관세 협상]
미리 본 주말 마러라고 골프 회동

일러스트=김성규
일러스트=김성규

이번 주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인 별장이 있는 미 플로리다에서 한국·일본·대만 기업가들과 트럼프 대통령 등 미 정·재계 인사들이 참가하는 골프 회동이 열린다. 한국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참가한다.

이번 골프 회동은 단순한 친선을 넘어, 한국 기업의 대미(對美) 투자와 양국 관세 통상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사실상의 외교 현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정부도 고전 중인 대미 관세 협상에서 이번 회동이 ‘타결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한국 총수 5인으로선 필생의 골프 라운드인 셈이다. 각기 다른 골프 실력을 지닌 이들은 방미를 앞두고 골프 연습에 매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 플로리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7~19일 현지 별장인 마러라고에 머물 예정이다. 방문 목적 중 하나는 17일 기부 만찬이다. ‘참가비 100만달러’를 내세운 초고액 모금 행사로, 트럼프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별개로 18일 이재용 회장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 등 한·일, 대만 기업가들의 단체 골프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투자 유치에 나선 손 회장이 주도적으로 성사시켰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골프 회합은 트럼프 대통령이 남아공 출신 전설적 골퍼 게리 플레이어의 90세 생일을 기념해 골프 행사를 열고자 했고, 손 회장이 사실상 총무 역할을 맡아 친분이 있는 한·일·대만 기업인들을 초청하면서 이뤄지는 것이다. 게리 플레이어는 2021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게 민간인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적인 모임에 VIP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날 라운드는 총 12조(4인 1조)로 진행된다. 조 구성은 미국 정부 관계자 1명, 미국 골프 선수 1명, 해외 경영자 2명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재계 총수들이 18홀을 도는 4~5시간 동안 미 정부 측 인사와 긴밀하게 소통할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도 초청을 받았지만 ‘미·중 사이 부담’을 이유로 참석을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기업인과 손정의 회장 정도를 빼면,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아주 큰 인사는 없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 정·재계 고위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관세 협상 얘기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만큼 국익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대 관심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누가 같은 조’가 될 것이냐는 점이다. 조 편성은 경기 당일 아침에 정해질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아무래도 이재용 회장이 0순위 아니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내 첨단 산업 투자 유치를 홍보하는 데,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가동·건설 중인 이재용 회장이 가장 상징적이자 중요한 ‘큰손’이기 때문이다. 골프 실력 면에서도 이 회장이 국내 재계에서는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회장은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골프를 끊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전까지 ‘재계 은둔 고수’라 불릴 만큼 수준급 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안양CC에서 이븐파(18홀을 정규 72타로 친 것)를 기록했고, 2011년엔 아마추어 골퍼 최고 영예로 꼽히는 R&A(영국왕립골프협회) 정회원이 됐다. 이 회장은 수년간 끊었던 골프를 재개하고, 일본 등지에서 틈틈이 집중 연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태원 회장은 테니스 마니아로, 골프를 자주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테니스로 단련한 덕분에 230m 정도 장타로 동반자를 놀라게 만든다고 한다. 최 회장과 함께 골프 라운드를 했던 한 인사는 “한 라운드에서 두세 차례 임팩트 있는 장타가 나오더라”라며 “다만 기복이 있어서 스트레스를 좀 받는 타입”이라고 귀띔했다.

정의선 회장은 꾸준히 80대 타수를 유지하는 ‘주말 골퍼’다. 지난 2월 PGA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때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와 손녀 카이 트럼프를 만나 ‘골프 외교’도 했다. 동반 골프를 하진 않았지만 코스를 함께 걸으며 긴 대화를 나눴다. 구광모 회장은 국내외 중요 비즈니스 파트너가 찾으면 그룹 소유 곤지암CC에서 골프 라운드를 갖지만 골프 자체를 즐기지는 않는 편이다. 그룹 총수 중 구력이 상대적으로 짧아 이번에 집중적으로 연습했다고 한다. 실력은 90타 정도로 알려졌다. 김동관 부회장은 주짓수와 웨이트트레이닝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긴다. 골프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강한 승부욕으로 80타대 수준 실력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마러라고 리조트 안에는 골프 코스가 없고, 차로 10분 거리에 웨스트팜비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이 있다. 최고급 골프장이다. 이번 주말 마러라고는 고액 후원금을 들고 모인 미국 내 지지자들, 그리고 대규모 투자 협력을 논의하는 한국의 경제계 거물들이 동시에 드나드는 권력과 비즈니스의 교차점이 될 전망이다./조선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