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과반 실패' 네타냐후의 운명, 아랍계 정당 손에 달렸다

이스라엘 아랍계 약진 '캐스팅보트'

통산 18년 이상 장기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집권 여부가 달린 이스라엘 총선이 접전 양상을 보이며 정국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출구 조사에서 주요 정당들이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전체 의석 중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제3세력인 아랍계 정당이 차기 정부 구성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대 민족의 독립 국가 건설과 이를 지키려는 민족주의 운동인 ‘시온주의’를 내세워 온 네타냐후의 정치적 운명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아랍계 주민들의 손에 맡겨질 운명에 처했다.


입 꽉 다문 네타냐후, 환호하는 野 아이젠코트  27일 이스라엘 총선 투표 종료 뒤, 베냐민 네타냐후(위쪽) 총리와 야권 도전자 가디 아이젠코트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네타냐후 진영과 아이젠코트 진영 어느 쪽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연정 구성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각 정파 간 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77%를 웃돌아,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EPA·AFP 연합뉴스
입 꽉 다문 네타냐후, 환호하는 野 아이젠코트 27일 이스라엘 총선 투표 종료 뒤, 베냐민 네타냐후(위쪽) 총리와 야권 도전자 가디 아이젠코트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네타냐후 진영과 아이젠코트 진영 어느 쪽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연정 구성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각 정파 간 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77%를 웃돌아,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EPA·AFP 연합뉴스

◇거대 양당, 과반 확보 실패

27일(현지 시각)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은 개표가 85%를 넘긴 가운데, 집권 세력인 네타냐후 진영은 총 120석 중 53석, 반네타냐후 성향 4개 유대계 야당은 48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양측 모두 다른 정당과 연립 없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최소 의석수(61석)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양 진영은 승리를 공식 선언하지 않았지만, 차기 정부 주도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네타냐후는 예루살렘에 집결한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며 “우리는 반드시 강력한 우파 민족주의 정부를 세워야 한다”며 “유대인과 시오니스트 다수가 단결해야 한다”고 했다. 야권을 이끄는 야샤르당의 가디 아이젠코트 의장(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텔아비브의 한 경기장에서 “국민은 변화에 투표했다”라면서 “합당한 지도자라면 국민의 불신임을 받아들이고 오늘 정계 은퇴를 선언할 것”이라며 네타냐후 퇴진을 촉구했다.

이번 총선은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습 이후 열린 첫 선거라는 점에서 이스라엘 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관심이 쏠렸다. 특히 이스라엘 최장수 총리인 네타냐후의 장기 집권에 대한 국민투표로 인식되며 해외에 거주하는 이스라엘인까지 자발적으로 귀국해 투표에 참여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실제 이번 총선 투표율은 77.7%로 1999년 이후 최고치였다.

이스라엘 언론 등에 따르면 최종 집계까지는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 어느 정당도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정당 대표들과 협의한 뒤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의원에게 조각 권한을 부여한다. 이 의원이 시한 내 연립을 구성해 크네세트의 신임 투표를 통과하면 총리에 취임한다. 구성에 실패하면 대통령이 다른 의원에게 한 차례 더 기회를 줄 수 있고, 그래도 실패할 경우 크네세트가 21일 안에 의원 61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 이마저 실패하면 크네세트가 해산되고 재선거를 치르게 된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선거에서 뚜렷한 승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이스라엘은 수 주 동안 정치적 교착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도 어려운 결정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지난 27일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의 아랍계 정당 조인트 리스트(Joint List) 선거본부에서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유세프 자바린(앞줄 왼쪽) 대표와 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7일 이스라엘 북부 나사렛의 아랍계 정당 조인트 리스트(Joint List) 선거본부에서 총선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유세프 자바린(앞줄 왼쪽) 대표와 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캐스팅보트 쥔 아랍계

네타냐후 측과 반네타냐후 세력이 과반에 실패하면서 아랍계가 차기 정부 구성의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중간 개표 결과에 따르면 아랍계 정당인 라암과 조인트 리스트(Joint List)는 19석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랍계 정당은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주민을 대변한다. 아랍계 주민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쟁 이후 이스라엘 영토에 남은 팔레스타인인과 그 후손들로, 80% 이상이 수니파 무슬림이다.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와 중부 아랍계 마을 등에 주로 거주한다. 이스라엘 시민으로 살아가면서도 가자지구·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과 민족적 유대감을 맺고 있다.

두 아랍계 정당 중 연립정부에 정식 참여한 적이 있는 정당은 라암뿐이다. 라암은 2021년 반네타냐후 연정에 합류한 적이 있다. 당시 우파를 중심으로 아랍계 참여에 대한 반발이 컸고, 연정은 연정 내부 이탈 등으로 약 1년 만인 2022년 6월 붕괴했다. 이후 같은 해 11월 총선을 거쳐 네타냐후가 재집권했다. 다만 이번 선거 결과 양대 세력이 근소한 의석수로 차이가 나면서 캐스팅보터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에서, 이들이 이번엔 적극적으로 연정에 참여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라암당 대표 만수르 아바스는 선거 후 “우리는 더 이상 정치권의 주변부에 있지 않다”며 “야권과 함께 61석을 확보해 현 정부를 교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강력한 시오니스트인 네타냐후와 중도 우파로 분류되는 아이젠코트는 모두 현재까진 아랍계 정당과의 연대를 배제해왔다. 이 때문에 이들이 연정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도 외부에서 지지를 표명하거나 차기 정부 구성 관련 표결에서 기권하는 방식으로 반네타냐후 진영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네타냐후가 집권 연장에 성공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와 손잡고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선거 직후 “이스라엘은 트럼프와 함께 이란의 실존적 위협을 영원히 제거할 역사적 기회 앞에 서있다”고 했다. 다만 아이젠코트가 총리가 되더라도 강경 안보 기조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그는 보병 부대인 골라니 여단에 병사로 입대해 군 최고위직인 참모총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