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상·하원 의회 권력을 모두 내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은 험로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은 각 상임위에서 조사권을 총동원해 트럼프 행정부의 사적 이익 추구와 권력 남용 의혹을 낱낱이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입법과 예산·인사권 등 국내 정치뿐 아니라 전쟁·관세 등 대외 분야 견제 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대통령의 재량권이 상대적으로 큰 외교·안보 분야에서 트럼프가 오히려 독자 행보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더 이상 선거를 치를 일이 없는 트럼프가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한층 거침없는 ‘마이웨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역시 관세와 원자력 추진 잠수함, 조선 협력 등 주요 현안에서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관세 압박 지속…원잠·조선 변수
한국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분야는 관세다. 민주당이 고물가의 원인으로 지목해 온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겠지만, 당장 한국에 대한 관세 압박이 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2월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를 무효화했음에도 트럼프는 무역확장법 232조와 무역법 301조 등 다른 법적 수단으로 관세를 유지하거나 새로 부과할 수 있다. 민주당이 관세 제한 법안을 통과시켜도 대통령의 거부권을 넘어야 한다.
특히 한국산 자동차와 철강 등에 적용되는 품목별 관세는 대통령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하고 있다.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한국 기업들에 곧바로 관세 인하라는 호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국내 정책 추진이 막힌 트럼프가 무역 상대국을 향한 압박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사업에도 변수가 생겼다. 작년 10월 트럼프가 건조를 승인한 원잠 사업은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던 지난 1년 동안에도 별다른 진척 사항이 없었다. 핵연료 공급과 원자력 기술 협력은 별도의 협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핵 비확산과 핵연료 이전 문제를 집중 검증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지체됐던 사업 추진 속도가 더 느려질 수 있다.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4명은 올해초 한국에 핵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한 비확산 조치를 요구하는 서한을 트럼프에게 보내기도 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원잠 협력에 미국 원자력법에 따른 새로운 협정과 의회 심사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조선협력 사업인 ‘마스가(MASGA)’도 마찬가지다. 한국 기업의 미국 조선소 투자와 미 해군 함정 정비 협력은 계속 추진할 수 있지만, 한국 조선소에서 미국 군함을 건조하는 문제는 다르다. 미국법은 원칙적으로 해외 군함 건조를 금지하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국가안보상 면제권을 부여하고 있다. 트럼프가 면제권을 행사하더라도 의회 통보와 예산 심사 등 견제 장치가 남아 있다. 미국 현지 조선소 투자는 일자리 창출 효과로 초당적 협력의 여지가 있지만 한국 내 군함 건조는 미국 조선업 보호 문제와 의회의 법적 장벽이 맞물려 논쟁이 예상된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의회의 감독을 받는다. 현재 심의 중인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은 전작권 전환에 대한 의회의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민주당의 양원 장악으로 전환 조건과 주한미군 운용 문제에 대한 검증 역시 강화될 수 있다.
◇이란·우크라 전쟁 충돌
국제 분쟁에서도 백악관과 의회의 충돌이 예상된다. 로이터는 민주당이 이란 전쟁에 대한 의회 승인 문제를 제기하고 군사비 지출을 제한하거나 행정부 고위 당국자를 청문회에 세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쟁 장기화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유가 급등이 중간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만큼 공세가 거세질 수 있다. 특히 민주당은 대표적인 ‘트럼프 충성파’이자 대(對)이란 매파인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간선거를 마친 의원들이 워싱턴에 복귀하는 이달말 하원에서 탄핵안 표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군 통수권자로서 군사작전과 외교 협상을 계속 주도할 수 있다. 의회가 전쟁권한 제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더라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를 무력화할 초당적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전쟁을 끝내도록 강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민주당이 군사·재정 지원 확대와 대러시아 제재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종전 협상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기조와 정면충돌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지원 예산을 확보하더라도 무기 이전과 외교 협상 집행 과정에서는 행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입법·예산·인사권 타격 불가피
국내 정책에서는 민주당의 양원 장악에 따른 타격이 더욱 직접적이다. 민주당은 예산안과 주요 법안의 처리권을 쥐고 강경 이민정책과 정부 지출 삭감 등에 제동을 걸 수 있다. 트럼프 일가의 부패 의혹을 비롯한 행정부에 대한 전방위적 조사와 트럼프 주변 인사들에 대한 각종 청문회 소환장 발부도 가능해진다.
특히 상원까지 잃은 트럼프는 각료와 대사, 연방판사 인준에서도 민주당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연방대법관 공석이 발생하면 인준 자체가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이 의회 상임위원장직을 장악하면 행정부의 정책 결정과 예산 집행, 고위 당국자들의 행적에 대한 조사도 본격화할 수 있다.
반면 민주당도 트럼프의 거부권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트럼프는 중간선거 투표가 전국적으로 마감되기 전 CBS뉴스 인터뷰에서 “내게는 궁극의 권한이 있다. 바로 ‘거부권’이라고 불리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상·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해 민주당 단독으로 트럼프의 정책을 뒤집기는 어렵다. 트럼프 역시 행정명령과 대통령 고유 권한을 활용해 의회를 우회하려 할 수 있다. 의회 권력은 민주당으로 넘어갔지만 백악관의 권력은 여전히 트럼프의 손에 남아 있으면서, 남은 임기 2년 동안 백악관과 의회의 정면충돌로 미국 정치의 교착 상태는 한층 심화할 가능성이 커졌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