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선 투표율 80% 송파에 투표지 50%만... 예견된 참사

선거인의 60%이던 투표용지 인쇄 기준 50%로 낮춘 중앙선관위
송파구 전체 투표용지 4만장 남았지만 투표소별 배분 제대로 안돼
"같은 아파트 단지 2개 투표소, 한 곳은 용지 남고 다른 곳은 모자라"
작년 대선 투표율 80% 넘긴 송파… 처음부터 예견된 사태

서울시장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고 투표 다음날까지 투표함 반출도 못하는 ‘선거 참사’가 발생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선거관리위원회가 24시간이 넘도록 진상 공개를 하지 못하자 국민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선관위의 ‘투표용지 50% 인쇄 지침’과 ‘투표소별 투표용지 분배 실패’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기 위해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 모여 있다./뉴스1
보수단체 회원들이 4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기 위해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 모여 있다./뉴스1

◇투표용지 인쇄 하한 60→50%로 낮춘 중앙선관위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정하는 건 구·시·군 선관위다. 중앙선관위 밑에 시·도 선관위가 있고, 시·도 선관위 밑에 구·시·군 선관위가 있다. 서울 송파구를 예로 들면, 중앙선관위-서울시선관위-송파구선관위의 체제다.

선관위 관계자는 “구·시·군 선관위는 사무국과 위원회로 나뉘는데 사무국에서 위원회로 투표용지 인쇄 기준 안건을 올리며 위원회에서 의결을 하는 식”이라고 했다.

말단의 구·시·군 선관위가 지역별로 투표용지를 얼마나 인쇄할지 정하지만, 가이드라인은 중앙선관위가 내린다. 이번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중앙선관위는 지방선거 기준으로 선거인수의 60%까지 투표용지를 인쇄하도록 지침을 줬다. 하지만 2022년 지방선거 이후 투표용지 폐기량이 많다며 인쇄 하한을 50%로 낮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관위가 선거인수의 50%로 하한을 낮췄고, 그 안에서 구·시·군 선관위가 지역 상황, 역대 선거율을 감안해 결정하게 돼 있다”며 “송파구선관위가 하한인 50%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송파구 외에도 인천시선관위도 선거인수의 50%만 투표용지를 인쇄했다가 여러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 사태를 겪었다.

4일 오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투표함 이송이 지연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시위대와 일부 주민들이 선거관리위원회 해체를 외치고 있다./뉴스1
4일 오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투표함 이송이 지연되고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시위대와 일부 주민들이 선거관리위원회 해체를 외치고 있다./뉴스1

이 때 ’50%‘는 사전투표는 뺀 수치다. 사전투표는 신분증을 확인하면 투표용지가 기계에서 바로 나오는 구조여서 미리 용지 인쇄를 하지 않는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인수 50%는 본투표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송파구 사전투표율이 23%였고 본투표용으로 선거인수의 50%를 준비했으니 선거인의 73%까지 투표가 가능했던 셈”이라고 했다.

◇송파에서만 투표용지 4만2000장 남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송파구 투표율은 65.82%였다. 선관위 설명대로라면 7~8%p 정도 차이가 나고 그만큼 투표용지도 남았어야 했다.

구체적으로 계산을 해보자. 이번 선거에서 송파구 선거인수는 56만5368명이다. 이중 사전·거소투표로 13만2207명이 투표를 했다. 사전투표율은 23.38%. 선거일 당일 투표에 참여한 건 23만9910명으로 본투표율은 42.43%다. 선거인수의 50%가 기준이었으니 송파구가 인쇄한 본투표용지는 28만2684장이 된다. 본투표에 참여한 인원을 빼면 4만2774장이 남는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송파구 투표소 곳곳이 투표용지 부족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송파구에서만 12곳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하루가 지나도록 투표함을 열지도 못한 표가 2000장에 달한다.

선관위와 정치권에선 전체 투표용지가 아닌 분배 과정에서 실책을 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인수의 50%에 해당하는 투표용지를 준비한다는 것은 송파구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송파구선관위가 투표소별로 투표용지를 배분하게 되는데 이때 어느 동네에는 많이 가고 어느 동네에는 부족한 식으로 편차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2동 제6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러 온 주민들이 대기하고 있다./연합뉴스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 2동 제6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러 온 주민들이 대기하고 있다./연합뉴스

선관위 업무를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투표용지가 부족한 투표소가 있으면 송파구선관위가 미리 파악해서 대처했어야 하는데 전날 송파에서는 이런 대응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3일 늦은 밤 잠실4동 제5투표소가 설치된 잠실래미안아이파크에서 만난 주민 윤모(68·남)씨는 “이곳 아파트에 두개의 투표소가 설치됐는데 한 곳은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다른 한 곳은 남았다고 한다”며 “투표용지가 부족한 곳에서 남는 용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송파 작년 대선 투표율 80% 넘었는데…용지 부족 예견된 사태

애초에 본투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선거인수의 50%만 투표용지를 인쇄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송파구의 경우 지난해 대선에서 투표율이 80%를 넘은 지역이다. 전체 서울 평균인 77.9%를 웃도는 수준으로 투표 열기가 뜨거운 곳 중 하나다. 이번 선거에서는 최종 투표율이 65.82%에 달했다.

선관위의 다른 관계자는 “50%는 중앙선관위가 하한으로 정해진 기준일 뿐 그보다 많이 인쇄해도 되는데 투표율이 높은 송파구선관위가 왜 50%로 결정했는지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서울 내 다른 자치구 선관위 중 일부는 60%를 기준으로 투표용지를 인쇄해 별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포, 강북 등이 대표적이다.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6·3 지방선거 본투표일인 3일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중앙선관위가 그동안 선거인수의 70% 안팎에서 투표용지를 인쇄한다고 설명해온 것과도 배치된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2020년 게시한 ‘선거일 투표용지 작성·송부·보관 과정’ 게시물에서 “통상 선거인수의 70%로 인쇄매수를 결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선거인수의 80%를 기준으로 인쇄 매수를 결정하도록 했는데 갈수록 투표용지 인쇄를 줄이다 사달이 난 것”이라며 “선관위가 공정한 선거 관리보다 비용 절감에 신경을 쓰면서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고 했다./조선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