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戰 4년, 사상자 200만… 미·우·러 종전회담 '빈손'

러시아군이 지난 8일 집중 포격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 지역의 주민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방어선의 핵심 거점이다. 러시아군은 최근 전선 인근 민간 지역에 포격 강도를 높이고 있다./EPA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지난 8일 집중 포격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 지역의 주민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방어선의 핵심 거점이다. 러시아군은 최근 전선 인근 민간 지역에 포격 강도를 높이고 있다./EPA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지난 17~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우크라이나·러시아 3자 회담이 종료됐다. 앞서 지난달 23~24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첫 3자 회담이 열렸을 때에는 러시아 측이 “건설적 협상이었다”는 반응을 내놔 이번 2차 회담에서는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에 따라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종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발발 4주년을 맞게 됐다.

대통령 선거 유세 때부터 이 전쟁의 조기 종전을 공언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양자 회동을 갖고 종전 협상을 이끌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난해 3월 6·25전쟁(남침부터 정전까지 1129일)보다 길어진 이 전쟁이 2차 세계 대전(6년)만큼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나섰지만 푸틴·젤렌스키 이견 좁히지 못해

이번 아부다비·제네바 회동은 전쟁 발발 후 첫 3자 대면이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쟁점은 러시아가 침공 후 무력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영토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자포리자 원전 운영 방안이었다. 도네츠크 지역의 80%를 점령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사수에 나선 나머지 20%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젤렌스키는 “침략자에게 영토를 내놓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도네츠크 지역에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자유무역지대를 조성하자는 중재안을 내놨지만 산업 기반이 모두 파괴돼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 최대 규모인 자포리자 원전 운영 문제를 두고도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공동 운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종전 핵심 조건인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 문제도 진전이 없다. 우크라이나는 종전 후 러시아가 재침공할 경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수준의 강력한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 같은 ‘다국적 평화군’ 파병 입장을 밝힌 상태지만 미국은 “영토 협상부터 끝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를 압박한다.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각자 정치 일정을 두고도 대립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3월에 전쟁을 끝내고 5월에 대선을 치르라”고 요구했다. 젤렌스키의 임기는 원래 2024년 5월까지지만 자국법에 따라 전시 비상 계엄 상태에서 임기를 연장하고 있는데, 젤렌스키 정권에 ‘국민 심판을 받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젤렌스키는 이에 강력 반발하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정치 일정까지 관여하는 것은 미국 내 정치 상황을 의식해서라는 평가도 나온다. 6월까지 협상을 끝내야 11월 중간선거에 불리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측근들의 부패 스캔들로 민심 이반에 직면한 젤렌스키로서는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영토를 내주고 대선을 치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 공세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들

전쟁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민간인 피해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겨냥한 장거리 미사일·드론 공습, 인해전술 진군을 계속하며 총력전의 고삐를 놓지 않고 있고 우크라이나도 반격으로 맞서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 17일 탄도미사일 29기와 드론 400기를 동원해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등 12개 지역을 집중 폭격했다. 젤렌스키는 “아이를 포함해 9명이 다쳤고 10채가 넘는 아파트와 기반 시설이 부서졌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역 석유 제품 저장고를 공격하며 반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를 운영하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우크라이나의 원군으로 등장했다. 머스크가 최근 스타링크를 러시아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차단한 이후인 지난 11~15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서울 면적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01㎢ 영토를 탈환했다고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가 밝혔다. 이는 2023년 6월 이후 최단 기간에 최대 면적 영토를 탈환한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겨울철을 맞아 전력·난방 등 에너지 기반 시설을 집중 타격하며 민간인 고통을 가중, 우크라이나 내부의 단합을 흔드는 전략까지 구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주민들의 고통도 가중되고 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지난 두 달간 기반 시설을 공격해 도시가 붕괴 직전 상황에 내몰렸다”며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으로 남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350만명이 사는 키이우는 최근 영하 20도 이하의 혹한 속에서 1600채 이상 건물의 에너지 공급이 끊겨 시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협상이 공전할수록 양국의 인명 피해도 계속 커지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ISW 등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들은 이번 전쟁의 사상자가 올봄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