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굴 된 '앙코르와트의 나라'... 그 뒤엔 40년 훈센 독재 있었다
[주간조선]

‘온라인 사기천국’ 캄보디아 부패사슬의 최정점에는 캄보디아의 실권자인 훈센(73) 일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1985년 32세 최연소 총리로 등극한 훈센 현 캄보디아 상원의장은 2023년 총리 자리를 그의 차남 훈마넷에게 물려주면서, 사실상 40년간 캄보디아를 다스려온 동남아 최장수 독재자다.
태국과 맞닿은 캄보디아 서부 국경도시 포이펫의 크라운 카지노를 거느린 집권 캄보디아인민당의 4선 상원의원인 콕안(71)은 훈센의 그림자로 불린다. 캄보디아에서 담배·주류 유통, 전력회사, 카지노 등을 거느린 ‘앙코 브라더스(Anco Brothers)’의 소유주인 콕안은 훈센 일가의 정치자금 통로로 꾸준히 의심받아왔다. 콕안은 캄보디아 왕실이 하사하는 귀족지위인 ‘옥냐’ 작위를 갖고 있는데, 태국 공영방송 PBS는 콕안을 “포이펫의 대부(代父)이자 훈센의 밀접한 동맹”이라고 소개했다.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분쟁 와중인 지난 7월 8일에는 태국 경찰이 훈센 일가에 타격을 줄 요량으로 콕안을 ‘온라인 사기 배후’로 지목해 자국 내 26곳의 관련 시설을 압수수색해 약 11억바트(약 480억원) 규모의 자산을 압류했다.
또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지난 9월 11일 콕안 일가를 캄보디아의 남부 항구도시 시아누크빌의 범죄단지 ‘카이보(Kaibo)’의 실소유주로 지목하기도 했다. 당시 카이보 단지를 ‘사기·인신매매’ 거점으로 분류한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콕안의 사위 리티 삼낭(2022년 사망)을 소유주로 표시했다. 콕안 일가의 사업장이 있는 포이펫과 시아누크빌은 ‘온라인 사기’를 노린 외국인 대상 납치, 감금이 빈번해 우리 외교부가 지난 10월 16일 0시부로 각각 흑색경보(여행금지)와 적색경보(출국권고)를 발령한 곳이기도 하다.
앞서 2016년에는 중국 측 요청으로 콕안 소유의 포이펫 크라운 카지노에서 ‘온라인 사기’를 벌이던 중국인 70여명이 대거 체포되기도 했다. 이처럼 캄보디아 굴지의 재벌이자 상원의원까지 온라인 사기에 종사하는 것은 캄보디아 카지노 산업의 부침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에서 카지노에 가장 관대한 국가로 꼽힌다. 캄보디아 도박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캄보디아에 개설된 카지노는 모두 48곳으로, 아시아에서 필리핀(79곳) 다음으로 많다. 미등록 카지노까지 합하면 200여곳에 육박한다.
캄보디아 카지노 산업의 유래는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4년 수도 프놈펜 메콩강변에 캄보디아 최대 규모의 ‘나가월드’ 카지노 복합리조트(1658개 객실)가 문을 연 것. 비록 1996년 캄보디아 의회가 ‘도박 억제법’을 제정하면서 자국민의 카지노 이용은 금지됐지만, 반대로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붐을 이루면서 인근의 태국, 베트남, 중국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다.
‘흑색경보’ 발령된 포이펫과 바벳
특히 태국·베트남과 맞닿은 국경도시를 중심으로 카지노가 활발히 개설됐다. 우리 외교부가 각각 흑색경보(여행금지)를 발령한 포이펫, 바벳 등이 대표적이다. 태국,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한 포이펫과 바벳에 개설된 카지노는 각각 8개, 11개에 달한다. 이 밖에 베트남의 푸꾸옥섬과 지척인 해안도시 시아누크빌에도 11개의 카지노가 성업 중이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캄보디아를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결국 이들 사업장 상당수가 ‘온라인 도박’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 비대면 사업을 병행하는 범죄거점으로 변질된 것. 자연히 여기서 벌어들인 범죄수익은 카지노에서 돈세탁을 거쳐 합법적인 자금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5월부터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지역에서 진행중인 군사분쟁도 카지노 사업과 연계되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프레아 비헤아 사원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일차적 이유였지만, 태국 정부가 캄보디아 내 온라인 사기 등을 이유로 육로를 통한 캄보디아 출입을 중단시키자 국경도시 포이펫 일대 카지노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 실제로 태국 국경 봉쇄 이후 109개 카지노 테이블을 갖춘 포이펫의 스타베가스 카지노의 모회사인 도나코(Donaco) 인터내셔널은 “국경 봉쇄 이후 일주일간 일평균 방문자 수가 62%, 호텔 점유율은 42% 하락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태국 경찰이 캄보디아 금융기업 ‘휘원(Huione)’을 자금세탁 및 코인사기 등의 혐의로 단속하는 과정에서 훈센 상원의장의 조카이자 훈마넷 총리의 사촌인 훈토가 연루된 것도 제재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훈토는 휘원그룹 내 결제서비스 회사인 ‘휘원페이’의 이사로, 미 재무부는 휘원그룹이 2021년부터 약 4년간 최소 40억달러(약 5조7000억원) 규모의 불법수익을 세탁했다고 추정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훈센은 패통탄 친나왓 당시 태국 총리와 나눈 통화를 일방적으로 공개했는데, 자국 군인을 모독하는 통화내용이 공개된 패통탄 친나왓 총리는 지난 8월 직무가 정지되고 총리직에서 실각하기에 이르렀다. 패통탄 친나왓 전 총리는 한때 훈센과 의형제였던 탁신 전 태국 총리의 막내딸이다.
중국 자금 몰려드는 시아누크빌
훈센 일가의 친중정책에 따라 중국계 자금이 캄보디아로 몰려드는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다. 특히 캄보디아 최대 항만도시로 2012년 중국 베이징에서 사망한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의 이름을 딴 시아누크빌은 중국 자본유치를 겨냥한 경제특구가 개설된 터라 중국 자본의 진출이 활발하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후 시작된 ‘일대일로(一带一路)’ 사업에 따라 위안화가 대거 유입됐는데, 이와 함께 중국계 폭력조직도 느슨한 현지 치안공백 등을 노려 유입됐다.
실제로 지난 9월 20일 시아누크빌 인근 고속도로에서는 차량에서 탈출한 중국인 피해자 2명이 현장에서 구조됐다. 이후 추가 피해자 4명이 확인됐고, 현지 경찰은 불법감금과 폭행혐의로 중국인 용의자 6명을 체포했다. 지난 10월 4일에는 시아누크빌에서 중국계 온라인 사기 조직의 임금체불 등에 항의하는 외국인 폭동이 일어나 군과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지난 8월 20대 한국인 대학생 박모씨가 중국인 폭력조직의 고문 끝에 시신으로 발견된 보코산도 시아누크빌과 지척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는 “캄보디아 내 중국계 범죄집단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필리핀이 한국·중국 등과 진행한 공조 수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성됐다”며 “라오스는 인구 수가 적어 적발되기 쉽고, 미얀마는 2021년 내전과 쿠데타로 여건이 좋지 않아 캄보디아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배후에 중국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 완전히 뿌리 뽑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