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물가·선거 쫓기는 트럼프 vs '경제 핵폭탄' 호르무즈 쥔 이란
美·이란 대면협상 전망은

11일(현지 시각)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 이란 대표단이 처음으로 마주 앉는 가운데, 이번 대면 협상은 불안한 휴전을 영구 종전으로 이끌지 다시 파국으로 향할지를 가를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협상을) 낙관한다”고 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실질 통제’라는 비대칭 전력을 쥐고 있어 미국이 험난한 협상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뇌부 상당수가 폭사하고 주요 인프라가 파괴당한 이란보다 미국이 더 마음이 다급한, 역설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美 제재에 내성 키운 이란
양국은 이번 협상에서 ▲호르무즈 해협 개방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 또는 감축 ▲핵물질 외부 반출 ▲종전 후 이란 안전 보장 ▲이란 대리 세력 등 의제를 놓고 담판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카드는 이란을 즉각적으로 굴복시킬 치명적 압박이라기보다 제한적인 유인책에 가깝다. 달러 결제망 복원이나 원유 수출 제재 해제의 경우, 이란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으나 체제의 명운을 좌우할 결정타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수십 년간 겹겹이 쌓인 미국의 제재를 견디며 서방 진영과 선을 긋는 독자적인 ‘저항 경제(Resistance Economy)’를 구축해왔다. 서방의 가혹한 제재 속에 철강, 시멘트, 자동차 부품 등 내수 산업을 자급자족 체제로 전환하며 ‘경제적 맷집’을 키워온 것이다.
여기에 이란 원유 수출의 90% 이상은 이른바 ‘그림자 선대(Dark Fleet)’로 불리는 비공식 유조선망을 통해 중국의 소규모 독립 정유사들로 향하고 있으며, 위안화 거래를 통해 미국의 달러 통제망을 이미 상당 부분 우회하고 있다. 심지어 39일간의 전쟁 기간 동안 글로벌 유가가 폭등하면서, 이란은 제재 우회 수출망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반사이익까지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무뎌진 美 칼끝, 호르무즈 쥔 이란
미국의 또 다른 핵심 카드인 ‘군사 옵션 재개’나 ‘체제 안전 보장’ 역시 협상장 내 파급력이 이전 같지 않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개전 이후 대대적인 공습으로 이란 수뇌부 상당수를 제거하는 ‘성과’를 냈지만, 결과적으로 정권 붕괴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란 정부는 오히려 ‘반미(反美)’를 기치로 전쟁 전 내부에서 분출하던 반정부 여론을 강압적으로 억누르고 체제 결속을 다지려 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국제법 위반 논란에 아랑곳없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이라는 레버리지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국제위기그룹(ICG) 등 주요 안보 싱크탱크는 글로벌 원유 물동량의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두고 “핵무기보다 파괴적인 이란의 비대칭 전력”이라고 했다. 유가 폭등과 증시 충격을 우려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키스탄에 먼저 이란과의 중재를 요청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올 만큼, 해협의 통항 재개 여부는 전적으로 이란의 손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의 안보 아킬레스건인 고농축 우라늄도 협상의 주요 변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해 6월 기준 약 441kg의 고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지하 깊숙이 요새화된 시설에 은닉돼 있다. 종전 협상에서 고농축우라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해 탈취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상당한 인명 피해가 예상돼, 미국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많다.
◇시간 쫓기는 트럼프, 장기전 채비 이란
트럼프는 당장 5월 중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 및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중대한 외교적 과제를 안고 있다. 나아가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올수록 전쟁 장기화로 인한 미국 내 물가와 에너지 가격 폭등은 지지층 이탈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반면, 이란은 전쟁을 거치며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면서 상대적으로 장기전에 대비할 정치적 결속력을 확보한 상태다.
이란이 시간을 끌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중동 특유의 ‘바자르(Bazaar·전통 시장)식 협상술’을 구사할 가능성도 크다. 결국 11일 협상은 미국이 과거와 달리 일방적인 압박보다는, 좁아진 선택지 속에서 이란과의 현실적 타협점을 모색해야 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