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급한 트럼프, 이란 軍 타격… '핵물질 처리'는 한발 물러서

다시 안갯속 빠진 종전 협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 묘지에서 열린 메모리얼 데이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 묘지에서 열린 메모리얼 데이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미국이 25일(현지 시각) 이란 남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일부 목표물을 공습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 중부사령부는 “기뢰 부설을 시도하는 이란 선박과 미사일 발사대를 겨냥한 ‘자위권 차원’의 공습이었다”며 “휴전 협상 도중 미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이란이 협상 막판 진통을 겪는 가운데,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압박 전략으로 해석됐다. 트럼프는 전날 “합의가 불발되면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강력한 공격이 재개될 것”이라고 했었다.

이에 맞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자국 영공을 침범한 미군 MQ-9 드론을 격추하고 F-35 전투기에도 사격을 가해 영공을 벗어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또 “침략적인 미군의 휴전 위반에 엄중히 경고한다”며 “휴전 위반 행위에 대해 보복할 권리를 정당하고 확고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충돌이 전면적인 공격 재개와 보복으로 확대되지는 않는 모양새다. 미 행정부 소식통들은 폭스뉴스에 “이번 타격이 이란과의 휴전이 끝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란 측에서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이 이끄는 협상단이 카타르 도하에 도착해 36조원 규모의 동결 자산 해제와 관련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카타르에서 일부 대화가 진행 중이고, 합의문 문구를 두고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다”며 “아마 며칠 걸릴 것”이라고 했다.

◇“핵물질, 이란에서 폐기도 가능”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이란 고농축 우라늄 처리 방안과 관련해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합의의 여지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종전 협상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고농축 우라늄 문제에 대해 트럼프는 “이란과의 협력·조율을 통해 현지에서 폐기되거나 또 다른 적절한 장소에서 미국 원자력에너지위원회나 상응하는 기관의 입회하에 폐기될 수 있다”고 했다.

이란이 보유한 60% 고농축 우라늄 약 440㎏을 미국이 회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란 핵물질을 러시아로 반출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트럼프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나 신경 쓰라’는 취지로 제안을 일축했을 만큼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란 공습을 단행하면서도 협상의 한쪽 문을 열어두는 강온 양면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날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통화에서도 관련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로써 “핵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이란이 합의에 응하기가 용이해지고, 트럼프 역시 핵물질 폐기를 앞세워 ‘이란 핵 개발 저지’라는 전쟁 목표 달성을 선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양국은 상호 적대 행위를 중단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한 뒤, 향후 30~60일에 걸쳐 핵 문제에 관한 추가 협상을 벌이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체결에 근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미국의 개전 명분이었던 ‘이란의 임박한 핵 위협’이 후순위로 밀리는 듯한 모습에 미 보수 진영에서 “이럴 거면 전쟁을 왜 했느냐”는 비판이 커졌고, 이는 트럼프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했다.

한편에서는 미국이 농축 우라늄 회수 카드를 내려놓으면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이나 정기 사찰 수용 같은 다른 쟁점에서도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트럼프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 행사 연설에서 이란 전쟁 전사자들을 언급하며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반면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날 성명을 내고 “중동의 민족과 영토는 더는 미군의 방패가 아니다”라며 중동 내 미군 기지 철수를 요구했다. 미국을 압박하면서 협상을 반대하는 자국 내 강경파를 달래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트럼프, 이란 고립 노리나

트럼프가 집권 1기의 대표적 외교 성과인 ‘아브라함 협정’과 이번 협상을 연계하려는 모습도 국내 반발에 맞서 성과를 강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브라함 협정은 미국 주도로 이스라엘과 아랍권 주요 국가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한 협정이다. 현재까지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등이 서명한 가운데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을 호명하며 미국과 이란의 합의를 촉구해 온 중동 국가들이 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브라함 협정이 확대되면 이란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전망이 있다. 사우디를 비롯한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을 필두로 한 시아파 국가들과 맞서는 구도로 중동 정세가 재편된다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는 이란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우디가 협정의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지위 인정을 요구하는 등 변수가 있어 협정이 단기간에 확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