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검투경기 연 로마 황제처럼... 팔순에 '백악관 UFC' 연 트럼프
건국 250주년 기념 '프리덤 250' 개최
“이건 믿을 수 없는 경기입니다. 모든 선수들이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루이스 로페즈, UFC 프리덤 250 페더급 경기 승리자)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트럼프 대통령께 감사합니다. 저는 항상 대통령을 존경해 왔습니다.” (보 니칼, 미들급 경기 승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경기 ‘UFC 프리덤 250’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트럼프와 최측근인 데이나 화이트 UFC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이 오벌 오피스에서 사우스론(남쪽 잔디밭)이 내려다 보이는 발코니로 걸어 나오는 것으로 시작됐다. 250피트(약 76m) 높이의 아치가 돋보이는 특설 무대 ‘더 클로(The Claw)’에 운집한 관객 약 4500명이 함성으로 트럼프를 맞았다. 미 국가(國歌)가 연주되자 공군 선더버드, 해군 블루 엔젤스 소속 전투기들이 하늘에서 곡예 비행을 선보였다. 경기를 생중계한 스트리밍 서비스 파라마운트 플러스의 해설자는 트럼프가 입장하는 내내 “이건 초현실적인 장면”이라고 흥분한 듯 외쳤다.
이어 경기가 한창이던 오후 11시34분엔 B-1 폭격기도 백악관 상공을 지나갔다. “너무 소리가 커서 일찍 잠에 든 워싱턴 DC 사람들이 일어나야 했을 것”이라고 백악관 풀 기자단이 표현할 정도였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하는 데 큰 역할을 한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도 해설자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상상도 못한 모습에 감동한 듯 주변 사람들과 격한 포옹을 나눴다. ‘UFC 프리덤 250′은 이날 자정 넘은 시간까지 7경기가 진행됐다. 경기를 펼치는 모든 선수들은 이날 손목에 성조기가 수놓인 맞춤형 빨간색, 하얀색, 또는 파란색 장갑을 착용했다. 트럼프가 약 1000명의 게스트를 선정해 초청했고, 현역 군인들이 우선권을 얻어 자비를 부담해 가며 워싱턴 DC까지 왔다고 한다. 객석에는 트럼프의 배우자인 멜라니아, 아들 주니어·에릭·배런, 손녀 카이 등의 모습이 보였다. 트럼프 정부 내각의 주요 인사와 공화당 의원,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립자 같은 기업인도 다수 출동했다.
이날은 트럼프의 80번째 생일이고 경기 시작 직전 이란과의 종전(終戰) 양해각서(MOU) 체결 소식도 전해져 분위기가 한 껏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첫 번째 경기부터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며 피투성이가 되자 관객들은 연신 “USA(미국)”라고 외쳤다. 또 경기 중간 중간 트럼프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빌리지 피플의 ‘Y.M.C.A.’가 흘러 나왔다. 스포츠에 좀처럼 관심이 없어 보이는 ‘얼음 공주’이자 백악관 실제인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은 X(옛 트위터)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무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규율, 책임감, 회복력, 그리고 노력의 보상을 가르쳐주는 스포츠의 가치는 항상 미국 정신의 핵심”이라고 했다. 앞서 백악관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밤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독립 250주년을 맞아 ‘국민의 집’인 백악관에서 이런 장관(spectacle)이 펼쳐지는 것은 적절한 헌사”라고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엔 불꽃이 워싱턴 DC 하늘을 수 놓았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UFC의 화이트 CEO는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정치적 후원자로, 트럼프의 주요 지지 그룹 중 하나인 2030 남성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UFC 측은 전 세계를 상대로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릴 이번 행사에 평소보다 3배 많은 6000만 달러(약 900억원) 이상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 후 잔디를 복구하는 데 70만 달러가 넘게 드는데, 최종 손실이 3000만 달러가 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가 무대 가설 상황까지 챙겨가며 행사 준비를 꼼꼼하게 챙긴 가운데, 연방 정부 기관 7곳 이상이 대회 준비에 투입되고 백악관이 보안 비용으로 1000만 달러 이상 부담하다는 점은 논란이 되고 있다. UFC는 지난 11일엔 국무부와 격투기를 활용한 ‘스포츠 외교’에 관한 업무 협약도 맺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백악관에서 UFC 경기를 하는 상황을 ‘달 착륙’에 비유했다. 백악관 바로 앞 ‘디 일립스’ 공원에 UFC 팬들이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즐길 수 있는 ‘팬 페스트(fan fest)’ 공간을 설치했다. 화이트가 1인당 2장씩 추첨을 통해 티켓을 무료로 배부했는데, AP 등은 최대 8만5000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했다. 워싱턴 DC의 주요 스포츠 바도 UFC 경기를 보려는 이들로 만원을 이뤘다.
이날 오후부터 워싱턴 DC 도심 주요 도로가 통제돼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는 가운데, 공원 앞은 행사장에 입장하려는 UFC 팬들과 트럼프 지지자들로 긴 줄이 들어섰다. 전날 워싱턴 DC의 명물인 링컨 메모리얼 등에서도 계측 행사, 기자회견 같은 부대 행사가 열렸다이번 경기를 놓고는 2월 시작돼 장기화 한 중동 상황, 고물가, 관세·반(反)이민 정책 등에 대한 사법부 제동 속 여러 실정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쇼’라는 지적도 상당한 편이다. 일부 민주당 지지 성향 시민들은 행사장 인근에서 트럼프와 J D 밴스 부통령 등을 조롱하는 조형물을 설치한 채 “그들을 체포하라” “우리는 USA(미국)이지 UFC가 아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피 튀기는 격투기 경기를 보게 된다면 지하에서 통탄할 것”이라 비판했다. 3~8일 진행된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선 응답자의 16%만이 행사 개최가 ‘적절하다’고 응답했고, ‘부절적하다’는 응답은 과반에 가까운 46%였다. 코리 부커 민주당 상원의원은 “국민이 식료품, 임대료를 감당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동안 대통령은 국민의 잔디밭에서 ‘개츠비 놀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