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 공동 방위 협정… '이슬람판 나토' 뜬다
중동 안보 불안에 수니파 3국 뭉쳐
중동 내 미국의 최대 군사 파트너 사우디아라비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 튀르키예, 인도·이스라엘·북한과 함께 비공식 핵보유국인 파키스탄. 이슬람권을 대표하는 세 군사 강국이 3자 방위 협정을 체결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7일 이슬람교 성지인 사우디 메카에서 만나 ‘메카 공동 방위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의 핵심은 한 국가에 대한 공격을 3국 모두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한다는 것이다.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토록 한 나토 조약의 핵심 집단 방위 조항(5조)과 거의 같다.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세 나라를 하나로 묶는 형제애와 이슬람 연대를 바탕으로 번영의 미래를 추구하는 협정”이라고 했다. 체결 공식 날짜를 이슬람력(1448년 2월 24일)으로 먼저 표기하는 등 이슬람 색채를 집중 부각시켰다.
사우디의 오일 머니, 튀르키예의 방산 기술, 파키스탄의 핵무기가 결합한, 인구 3억8000만명 규모의 ‘이슬람판 나토’ 출범이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자지라는 “세계 최대 이슬람 3국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안보 체제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번 협정이 발발 6개월에 접어든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결됐다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세 나라 모두 이슬람 수니파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시아파 맹주 이란과는 불편한 관계다.
앞서 사우디와 파키스탄은 지난해 9월 나토식 전략적 상호 방위 협정(SMDA)을 체결했다. 두 나라는 이를 공동 방위 협정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논의해 지난 1월 협정문 초안을 마련했다. 여기에 지난 2월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중동 정세가 요동치자 튀르키예까지 합류하면서 3자 방위 협정으로 급물살을 탔다.
세 나라는 이슬람권 내 지위가 확고하다. 사우디는 이슬람의 양대 성지인 메카·메디나를 모두 품은 종주국이라는 권위와 막강한 오일머니, 빈살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브로맨스 밀착’을 앞세워 중동의 맹주를 자처했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 등 권위주의 진영과도 협력해 왔고, 202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전쟁 때는 중재자로 나섰다. 앙숙 인도와의 군비 경쟁 과정에서 핵보유국이 된 파키스탄은 미·이란 전쟁의 휴전 협상 국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이란 전쟁을 계기로 기존 안보 질서의 한계를 절감한 3국이 저마다의 계산에 따라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을 공습한 미국을 돕다 무차별 보복을 당한 사우디는 원유 수출의 ‘생명선’인 호르무즈 해협, 자국에 면한 홍해 및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위협받는 상황을 근본적인 안보 위협으로 인식한다. 여기에 미국이 사드·패트리엇 요격 미사일 고갈로 중동 방어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독자적 억지력 구축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파키스탄은 이번 협정을 계기로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더욱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인도와의 남아시아 패권 다툼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파키스탄은 그간 외환 위기 때마다 사우디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아왔다. 1998년 핵실험에 따른 국제 제재 때는 사우디에서 하루 5만 배럴의 원유를 무상 제공받았다.
튀르키예는 이번 협정을 유럽과 중동을 잇는 지정학적 이점과 접목해 ‘글로벌 군사 강국’으로 입지를 굳히고 이스라엘을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등에 100억달러 이상의 무기를 수출하며 세계적 방산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시리아·리비아 내전 등에 참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다른 수니파 군사 강국 이집트가 ‘메카 공동 방위 협정’에 추가 합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집트는 올 초 사우디·튀르키예·파키스탄과 함께 4자 외교 안보 협력체(R4)를 결성했다. R4 외무장관들은 지난 5일 요르단 암만에서 회동한 뒤 미·이란 휴전 협상의 조속한 속개와 긴장 완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 때문에 중동 정세 격변 때마다 ‘아랍의 맏형’을 자처하며 적극 관여했던 이집트의 합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의 보복에 상당히 피해를 본 걸프 협력 회의 국가들의 추가 가입 여지도 있다.
‘메카 공동 방위 협정’이 ‘수니파 이슬람 군사 동맹’으로 팽창한다면, 이스라엘이 견제에 나설 수 있다. 또 파키스탄과 핵무기 증강 경쟁을 벌여온 인도까지 가세하면 세계 안보의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향후 중동 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더라도 미국의 영향력 약화는 필연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적잖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안드레아스 크리그 부교수는 “수조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도 미국이 이란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우선 보호하는 모습에 걸프 국가들은 충격을 받았다”며 “중동에서 미국 패권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