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 든 의원들 낙마시키려 '자객' 보낸 트럼프

 선거구 조정 반대한 공화 6명 향해
'이름만 공화당원' 칭하며 조롱·비난
그들과 싸울 충성파 6명 지지글 올려
'자신이 지지 땐 역전승' 도표도 첨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 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집권 2기 첫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밤 워싱턴 DC 연방의회에서 2기 집권 후 첫 국정연설을 마친 뒤 몇 시간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게시물 여섯 개를 연달아 올렸다. 각 게시물의 구성은 비슷했다. 오는 11월 열리는 인디애나주 주의회 선거에서 의원직 수성에 나선 현직 주 상원의원 여섯 명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깎아내리고, 자신이 미는 도전자를 띄우는 장문의 지지 글이었다.

지금은 현역 의원 프리미엄에 밀려 고전하고 있지만 자신의 지지를 얻으면 지지율이 폭등하는 것으로 그려진 ‘비포 앤드 애프터’ 형식의 지지율 막대 그래프까지 곁들였다. 주로 세계 정상들이나 미국 거물급 지도자들을 소재로 ‘소셜미디어 정치’를 해온 트럼프가 미국인들에게조차 이름이 생소한 지방 의원 도전자들을 비중 있게 언급한 까닭이 있다.

이들은 인디애나주 연방 하원 의원 선거구 게리맨더링(인위적 선거구 조정)을 강행하라는 트럼프의 지시를 거부하고 반란표를 던진 현역 주 상원 의원들을 제거하기 위한 ‘저격수’이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 MAGA(미국을 더욱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트럼프 충성파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게시물이 올라온 뒤 미 정치권에서는 “트럼프가 예고대로 배신자 숙청에 나섰다”는 반응이 나왔다.

인디애나 주의회 선거에서 도전자의 낮은 지지율(왼쪽 빨간색 막대)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얻으면 그림 오른쪽처럼 현역 의원(보라색 막대)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그래픽. 트럼프는 이런 그래픽 여섯 개를 연달아 올렸다.
/트루스소셜
인디애나 주의회 선거에서 도전자의 낮은 지지율(왼쪽 빨간색 막대)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얻으면 그림 오른쪽처럼 현역 의원(보라색 막대)을 크게 뛰어넘는다는 그래픽. 트럼프는 이런 그래픽 여섯 개를 연달아 올렸다. /트루스소셜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된 ‘지방의원 반란’은 지난해 12월 벌어졌다. 인디애나주 상원은 트럼프가 강력히 요구해 온 연방 하원 선거구 재획정안을 반대 31, 찬성 19표로 부결시켰다. 인디애나주는 의석의 3분의 2 이상이 공화당인데, 공화당 의원 21명이 민주당(10명)과 손잡고 반란표를 던진 것이다. 트럼프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연방 하원 장악을 막기 위해 텃밭 의석수를 늘릴 목적으로 인디애나주 공화당 진영을 압박해 게리맨더링을 성사시키려 했지만 같은 공화당 의원들의 반기로 좌절되자 격앙했다.

트럼프는 부결 직후 “반대한 사람들에게 프라이머리를 붙이겠다”고 보복을 천명했고, 이들을 낙마시키기 위해 도전자들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정연설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목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보복 대상 여섯 명과 각각의 저격수를 한꺼번에 공개한 것이다. 인디애나 주의회 선거는 11월 중간선거와 함께 치르지만, 본선에서 유리한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프라이머리)은 5월에 열린다. 선거전이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트럼프가 선거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각 게시물에서는 트럼프의 뒤끝이 드러났다. 자신이 점찍은 제거 대상 중 한 명인 그렉 굿(Goode) 주 상원의원에 대해서는 쓸모 없다(no good)는 뜻과 발음이 같은 ‘노 굿’이라고 조롱하면서 “선거구 재조정에 반대표를 던져 민주당 편에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고 급진 좌파들의 영웅이 됐다”고 공격했다. 반면 도전자인 브렌다 윌슨 비고 카운티 행정 책임자에 대해서는 “후지어(Hoosier·인디애나주 출신들이 자기들을 이르는 말)들의 가치를 지켜서 소상공인을 보호하고 국경을 지키고 수정헌법 2조(총기 소유권) 수호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했다. 보수적 지역 정서까지 동원해서 한껏 띄워준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여론조사상 윌슨(14%)의 지지율이 현역 굿 의원(39%)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트럼프의 지지를 얻어낼 경우 59%로 역전해 굿(20%)을 세 배로 앞선다는 그래프를 나란히 실었다. 트럼프는 제거대상인 주의원을 모두 ‘이름만 공화당원’ 이라는 뜻의 ‘RINO’라고 불렀다.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나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지지 발언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주의회 선거까지 개입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이런 행보에는 트럼프의 초조함이 반영돼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취임 후 지지율이 꾸준히 하락세인 상황에서 중간선거를 계기로 조기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무리하게 당내 충성도 테스트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트럼프의 행보가 역풍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근 선거 결과를 보면 트럼프의 공개 지지가 승리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텍사스 주의회 상원 보궐선거에서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전폭 지지한 공화당 후보는 민주당 후보에게 14%포인트 차로 패배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17%포인트 차로 이겼던 지역 여론이 1년 만에 30%포인트 넘게 뒤집힌 이변이었다. 당시에도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투표를 적극 독려했었다.

오히려 트럼프가 직접 제거 대상으로 언급한 인디애나주 상원의원들의 지명도가 높아지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중 한 명인 그렉 워커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겨냥해 “전국 정치인(트럼프)의 지지가 지방 선거에서 실제 영향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며 “선거구 재조정 표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RINO(이름만 공화당원)

‘이름만 공화당원(Republican In Name Only)’이라는 말의 축약어. 공화당 내 강경파들이 정치·사회 현안에서 온건·중도 성향을 보이는 당원들을 비판하는 말이다. 1990년대 처음 등장했고 도널드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부터 많이 쓰였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