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의 호남통신] 광주·전남 통합, 근조화환만 남은 막장 행정

지하철 부채 3.5조, 재정자립도 최하위
행정통합 지원금 20조 받으려 속전속결
고위직 늘리고 연봉은 서울시 수준 요구

區도 市로 승격해 예산 뜯어내는 특별법
광주·무안·순천으로 청사 쪼개 비효율 ↑
총체적 난국에 시민들 "이게 뭐냐" 분통

일러스트=이철원
일러스트=이철원

수도권 일극 체제 대응과 지방소멸 위기 극복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출범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행정통합이 불과 두 달 만에 파열음을 내고 있다. 축하 분위기는 사라지고 광주청사 앞에는 장거리 출퇴근과 전근을 반대하는 공무원 노조의 근조화환 수십 개가 도열했다. 축하 꽃다발 대신 근조화환만 남은 이 막장 행정의 궤적은 참담한 지방 행정의 실패를 드러낸다.

사태의 시작은 광주 지하철 1호선의 노선 설계 실패였다. 고속터미널, 시청, 주요 대학가를 모두 비껴간 1호선은 ‘공기 수송칸’이라는 오명 속에 매년 수백억 원의 적자를 냈다. 시민들의 원성에 무리하게 2호선을 착공했지만, 광역시 중 최하위 재정자립도 속에서 지하철 부채만 3조5000억원에 달했다. 행정안전부 지방재정위기관리제도에서 제시하는 ‘주의 단체’ 기준을 넘어섰다.

이 위기를 탈출할 유일한 밧줄로 다가온 것이 바로 정부의 광역지자체 행정통합 지원책이었다. 역시 광역자치도 중 재정자립도가 최하위권인 전남과 광주는 정부가 행정통합 지자체에 ‘20조원 지원’을 공언하자마자 손을 뻗었다. 속전속결로 통합 절차를 밟고 단일 후보까지 내며 속도전을 벌인 진짜 동기는 지원금 20조원으로 지하철 빚을 메우려는 얄팍한 셈법이었던 것이다.

7월 2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청사 앞에 광주청사 핵심부서 재배치를 규탄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 있다. /뉴시스
7월 24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청사 앞에 광주청사 핵심부서 재배치를 규탄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 있다. /뉴시스

하지만 준비 없는 통합의 대가는 혹독했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이 최근 “정부가 국고로만 2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확정한 적은 없다”고 밝히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헛된 돈을 좇다 실패하고 갈등만 남긴 채 냉엄한 재정 현실에 직면하자, 통합특별시가 내놓은 대응책은 ‘조직 비대화’와 ‘예산 편취용 편법’이었다.

먼저, 특별시장 연봉은 서울시장 수준인 1억5493만원으로 올렸다. 차관급 부시장은 인구 930만 서울과 1370만 경기도가 3명인데, 인구 320만의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4명을 뒀다. 여기에 1급 직위 정원을 기존 4개에서 7개, 2급을 8개에서 22개로 확대해 줄 것을 중앙정부에 요구했다. 인구는 서울의 3분의 1 수준인데 고위직 정원과 연봉은 서울시 수준 이상으로 맞춰달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광주 동·서·남·북·광산구를 폐지하고 각각 ‘시’로 승격시켜 예산을 더 뜯어내려는 특별법 개정안까지 발의했다. 2025년 기준 광주 북구가 받은 정부지원금이 인구가 더 적은 목포시보다 적다는 점을 노린 편법이다. 자치구와 달리 시·군은 정부에서 직접 지원을 받고 세목도 많다는 점을 이용해, 간판만 바꿔 달아 돈을 더 타내겠다는 발상이다.

전국공무원노조 광주시지부가 24일 낮 광주청사 로비에서 핵심부서 균형 재배치를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 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전국공무원노조 광주시지부가 24일 낮 광주청사 로비에서 핵심부서 균형 재배치를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 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조직은 비대해졌지만 행정 효율성은 바닥이다. 주 청사를 한 곳으로 통폐합하기는커녕 광주·무안·순천 3곳으로 기능을 분산했다. 그러니 회의 때마다 공무원 대다수가 이동에만 1시간 이상 허비한다. 25억원을 들인 영상회의 시스템은 제대로 쓰지도 않는다. 광주 노조는 무안·동부청사 중심의 개편을 “전남 인사 적체 해소용”이라 비판하고, 전남 노조는 균형 배치를 요구하며 대립한다.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에 필수적인 군공항 무안 이전 추진에 무안군수는 민간공항 선 이전과 지역발전 예산 1조원 책정 등 선결 조건만 요구하며 이전 부지 선정위원회에 지속 불참하고 있다.

기존의 동서 갈등 중재 능력은 여전히 낙제점이다. 나주·목포·무안 등 ‘영산강권(서부권)’과 여수·순천·광양의 ‘섬진강권(동부권)’은 생활권이 명확히 갈린다. 동부는 경상도 출향민이 많아 정치적 성향도 다르다. 동부 주민들은 인구도 서부권보다 많고 산업단지가 많아 GRDP(지역 내 총생산)가 서부권에 3배에 달하는데도 재정 및 인프라를 서부가 다 가져간다는 불만이 쌓여왔다. 그 갈등의 정점에 순천대와 목포대의 통합 공공의대 설립 이슈가 있다. 통합 대학 이름으로 ‘김대중대’가 거론되자 순천대 학생 60.7%가 반대한 배경에는 목포에 대학 본부와 의대를 두고 순천에는 병원만 세우겠다는 ‘영산강 패권주의’에 대한 저항이 컸다. 신안 출신 김대중과 상관없는 순천 출신 김종익 선생의 기부로 세워지고 지역민을 키워온 순천대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도 작용했다. 결국 통합 공공의대 설립은 무산됐다.

총체적 난국에 시민들은 “통합 전보다 나아지는 건 없고, 예산만 더 드는데 내 고장 광주는 갈가리 찢겨진다. 이게 뭐냐”며 분통을 터트린다. 민형배 시장의 지지율은 34%까지 폭락했다.

행정구역 개편의 본질은 행정 조직의 군살을 빼 효율성을 증대시켜 민간 경제에 활력을 주고, 실제 생활권에 기반한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본질에 충실해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구의 시 승격’은 중단해야 한다. 지하철 공사로 빚을 많이 졌으면 중복된 행정을 과감히 축소해 예산을 절감하고, 기존 청사 및 시유지를 민간에 매각하거나 공공기관 임대 등의 수익 사업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구를 시로 승격해 버리면 국가 행정체계의 근간을 파괴하고, 예산만 많이 들지 않겠는가?

100년 전 일제강점기에 그어진 전근대적 ‘도(道)’ 경계로 돌아가지 말고 현재의 생활권을 반영한 행정구역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 산꼭대기에 사람이 살 수 없기에 그 경계로 형성된 강을 따라 이뤄진 생활권을 통합시켜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말이다. 1995년 여수·여천, 2008년 마산·창원·진해, 2014년 청주·청원 통합이 좋은 예다. 전남 동부 섬진강권 도시들은 따로 광역자치단체를 만들어 행정과 지역 의료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 송파구, 성남시, 하남시 3개 지자체에 걸친 위례신도시 주민들이 겪는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메가시티 구상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금강 상류와 섬진강 상류가 전북에 흐르면서 발생하는 용수 문제 해결을 위한 행정구역 개편도 검토 대상이다./조선오피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