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뒤흔드는 '네타냐후의 전쟁'
"이스라엘엔 완수할 목표 있어" 레바논 최대 규모 공습
이란 반발하며 호르무즈 개방 거부… 협상 최대 걸림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8일(현지 시각)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에 대해 “나는 휴전 합의에 (레바논) 헤즈볼라는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이스라엘은 계속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했다. 네타냐후는 또 “이스라엘에는 완수해야 할 목표가 더 많이 남아 있다. 우리는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이스라엘은 이날 레바논 전역에 개전 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벌였다.
‘네타냐후의 전쟁’이 미국·이란의 휴전 합의를 하루 만에 시험대에 올렸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휴전 합의 위반’이라고 반발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할 수 없다고 했고, 미국 역시 이란이 호르무즈를 계속 봉쇄한다면 언제든 합의를 깰 수 있다며 맞섰다. 국제사회에선 ‘네타냐후 변수’로 인해 휴전 합의가 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분출하는 상황이다.
네타냐후는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는 필요할 때 언제든 전투에 복귀할 준비가 돼 있다”며 “손가락은 방아쇠 위에 놓여 있다”고 했다. 또 “이스라엘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며 “임시 협의는 작전의 끝이 아니다”라고 했다. 언제든지 이란 공격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네타냐후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스라엘의 지난 2월 28일 개전 공습은 네타냐후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라고 설득한 데서 비롯됐음이 뉴욕타임스(NYT)의 심층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이후 네타냐후는 미국의 반대에도 이란 정유 시설과 산업 인프라를 공습하고, 이란이 여기에 보복하면서 이번 전쟁 양상을 국지적 충돌이 아닌 세계의 에너지 공급망까지 마비시키는 ‘섬멸전’으로 확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네타냐후, 이번에도 ‘산통 깨기’ 작전?
알자지라는 “이스라엘은 휴전이 성사되기 전에 특정 목표물을 향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하는 일정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전쟁은 ‘아메리카 퍼스트’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 퍼스트’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주요 국면을 이스라엘이 주도했다. 이스라엘이 언제나 미국의 선택지를 좁히면서 이란 전쟁에서 발을 빼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네타냐후가 지난달 17일 이란의 ‘대(對)서방 대화 창구’였던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을 ‘참수 작전’으로 제거한 것 역시 트럼프의 ‘출구’를 없애려는 목적으로 분석됐다.


트럼프에 대한 네타냐후의 영향력은 NYT가 보도한 지난 2월 12일 백악관 회의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네타냐후는 극비리에 백악관을 방문, 외국 정상에게 거의 개방되지 않는 상황실에서 미·이스라엘 핵심 참모를 대동하고 사실상 ‘작전 회의’를 주도하다시피 했다. 네타냐후는 전쟁 이전 트럼프에게 “이란의 암살 시도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한다”고 부추기기도 했다.
네타냐후는 대국민 담화에서 트럼프를 “내 친구 도널드”라고 부르며 “우리는 매일 통화하고, 트럼프가 내게 ‘당신은 굉장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미소를 짓는다”고 했다. 네타냐후는 지난 휴전 발표 이틀 전까지도 트럼프에게 ‘휴전에 동의하지 말라’고 압박했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이 보도했다.
부패 혐의로 기소돼 있는 네타냐후는 이대로 전쟁이 끝날 경우 가장 큰 패배자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 법원은 휴전 발표 후 국가 비상령이 해제됨에 따라 네타냐후의 부패 재판을 재개한다고 9일 발표했다. 이란 정권을 여전히 혁명수비대가 장악한 상황에서 본인은 재판을 받으면서 오는 10월 총선에서 실각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제1야당 대표인 야이르 라피드는 휴전이 발표되자마자 “네타냐후는 전쟁을 어떻게 끝낼지 비전도 없이 이스라엘 시민과 동맹국 미국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며 “네타냐후는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이런 상황에서 네타냐후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공격을 재개하라’고 트럼프를 필사적으로 설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네타냐후의 밀착 정황은 ‘레바논 공격 중지’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데서도 감지된다.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당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휴전에 합의했다”고 했고, 트럼프 역시 초반엔 수용하는 듯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8일 미 PBS 인터뷰에서 레바논에 대해 “휴전 합의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했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대해서도 “협상의 일부이며 별개의 작은 교전”이라고 했다. JD 밴스 미 부통령도 “우리는 절대 그런 약속(레바논 완전 휴전)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 40년 숙원 ‘이란 붕괴’ 쉽게 포기 못 해
전문가들은 현 국면에서 네타냐후가 ‘이란 완전 붕괴’라는 40년 숙원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한다. 이스라엘의 분석가 알리 골드버그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현재 레바논 공격은 네타냐후의 절박한 상황을 보여준다”며 “네타냐후는 트럼프의 이란 공격에 모든 것을 건 도박꾼”이라고 했다.
네타냐후는 이번 전쟁에 대해 “중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역사적 군사 작전”이라고 했다. 그는 시나이 반도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중동 땅을 구약성서의 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른바 ‘대(大)이스라엘(Greater Israel)’ 구상의 신봉자로 알려졌다. 이 구상대로라면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영토가 이스라엘의 편입 대상이 된다.
‘대 이스라엘 구상’은 성서의 종말론적 세계관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의 주요 지지 기반인 미국의 강경 우익 개신교 진영에서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목사 출신인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가 전쟁 이전에 “이스라엘이 중동을 차지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발언해 아랍권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이스라엘이 ‘독사의 머리’라고 부르는 중동의 최대 숙적 이란이 휴전을 계기로 ‘정상 국가’로 복귀하는 모습을 네타냐후와 미국의 우익 개신교 진영이 용납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조선국제
☞대 이스라엘(Greater Israel)
신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 네 자손에게 준다”고 약속했다는 구약성서 구절을 근거로 이스라엘 민족주의(시온주의) 진영에서 주장하는 고토(古土) 회복 운동. 레바논 침공 등을 정당화하는 종교적 근거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