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인권·체제·발전권 건드리지 말라"… 中, 美에 4대 레드라인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전 선그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을 하루 앞둔 2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 시위자가 가로등 기둥에 올라 ‘독재자 시진핑, 당신의 제국은 무너지고 티베트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미국 국빈 방문을 하루 앞둔 2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한 시위자가 가로등 기둥에 올라 ‘독재자 시진핑, 당신의 제국은 무너지고 티베트는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미국 국빈 방문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출발했다. 시진핑의 미국 국빈 방문은 2015년 버락 오바마 재임 당시 이후 11년 만으로,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이후 넉 달 만의 답방이다. 트럼프 부부는 이례적으로 23일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합동 기지에서 시진핑 부부를 맞을 예정이다.

그러나 중국은 협상 테이블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부터 나열했다. 셰펑 주미 중국대사는 이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고문에서 대만 문제와 민주·인권, 발전 경로·제도, 발전권을 미·중 관계의 ‘4대 레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미국의 대중 압박 수단을 하나씩 겨냥한 것으로, 미국에 대만 무기 판매를 중단할 것, 중국의 정치 체제와 인권 문제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을 것, 국가 안보와 강제 노동 등을 이유로 중국 기업을 제재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한 것이다. 셰펑은 “중국의 주권·안보·발전 이익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최근 양국이 AI 규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이 ‘발전권’을 레드라인에 포함시킨 것은 미국의 반도체·AI 규제를 단순 통상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성장 자체를 막는 문제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중국이 말하는 ‘발전권’은 국가가 외부의 간섭 없이 경제·산업·기술을 발전시킬 권리를 뜻한다. 미국의 첨단기술 제재와 수출통제는 중국의 발전권을 억압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셰펑은 “AI 분야에서 미국이 ‘실리콘 장막’을 쳐서는 안 되고 ‘AI판 스타워즈’를 벌여서도 안 된다”고 했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지난주 협상에서 심각한 AI 안전 사고 발생 시 연락할 채널을 만들고 두 달 뒤 중국 선전에서 후속 협의를 하기로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이번에 열리는 회담에서 트럼프와 시진핑이 원하는 것은 서로 다르다. 트럼프는 중국의 미국산 대두와 보잉 여객기 구매처럼 미국 유권자에게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 ‘단기 성과’가 필요하다. 중국은 지난 5월 미국산 보잉 항공기 200대를 구매하기로 했고 미 무역대표부에 따르면 약 140대의 주문이 진행 중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이달 초 한 주 동안 미국산 대두 약 100만t도 사들였다.

반면 시진핑에게는 무역 전쟁의 다음 라운드를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것이 핵심이다. 미·중 무역 휴전은 11월 10일 만료될 예정이지만 아직 1년 이상 연장안은 확정하지 못했다. 휴전 기간이 짧으면 중국은 내년 가을 당 대회를 앞두고 다시 미국과 관세 협상을 벌여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내수 부진과 부동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며 자국 반도체와 AI, 첨단 제조업의 자립도를 끌어올리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시간을 사는 데 사용할 가장 강한 지렛대는 희토류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채굴의 최대 70%, 정제 능력의 85%를 차지한다. 미국이 중국산 첨단 반도체 접근을 막는다면, 중국은 미국 제조업이 필요로 하는 원료와 소재의 공급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의 희토류 지배력으로 인해 미국이 관세와 기술 수출 통제를 예전처럼 동시에 밀어붙이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트럼프가 이란 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원하면서 시진핑은 사용할 수 있는 협상 카드가 하나 늘었다.

양국 기업 대표단의 얼굴에서도 전략 차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국빈 만찬에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 등 AI와 빅테크의 대표 선수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에서는 비야디(BYD)·CATL·샤오미 등 제조업 경영진의 동행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과 문샷AI 창업자 양즈린은 명단에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대중 AI·반도체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AI 최전선의 인재를 외교 무대에 올리기보다 보호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24일 백악관 협상 테이블에는 희토류, 이란, 무역 휴전, 기술 규제, 대만 문제가 한꺼번에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회담의 핵심은 양보보다 충돌 관리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두 정상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조금씩 내주면서 중요한 카드는 끝까지 손에 쥔 채 장기 경쟁의 룰을 협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