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의 워게임... "러軍 1만5000명, 3일 만에 리투아니아 요충지 점령"

보수 정론지 '디 벨트'와 獨 국방대학 워게이밍 센터 공동으로 워게임 실시
러시아가 자국민 구호하려는 '제한적 임무'로 포장하자
미국은 나토 국가 공격에도 '자동개입' 안 하고
독일은 "러 확전 위협에, 우리가 긴장 완화해야 한다" 사고에 갇혀

2026년 10월 27일 오전6시47분, 독일 총리실에 비상이 걸렸다. 칼리닌그라드의 러시아군 1만5000명이 리투아니아와의 국경으로 집결했다는 정보였다.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끼어 있는 발트해 연안 러시아 영토다.<지도 참고> 이에 앞서 5월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휴전에 돌입했고, 덕분에 러시아군 20만 명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풀려났다.

물론 이건 가상(假想)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설정해 전개해 보는 것이 워게임(wargame)이다. 이런 상황의 발생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경우 적이 활용할 수 있는 취약점을 미리 발견하는 것이 목적이다.

독일의 보수적인 중도우파 정론지인 디 벨트(Die Welt)는 6일 독일연방군의 장교 양성 엘리트 대학인 헬무트 슈미트 대학교 워게이밍(wargaming) 센터와 공동으로 독일(블루 팀)과 그 동맹국들이 러시아(레드 팀)과 대결하는 워게임을 실시한 결과를 보도했다. 워게이밍센터가 시나리오 개발과 실행을 맡아 작년 12월 초 양측에선 전직 최고 의사결정자와 전직 장성들, 안보 전문가 등 16명이 참여해 3일간 모의전쟁을 치렀다.

발트 3국과 다른 나토 국가들을 잇는 도로와,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민스크를 잇는 도로가 교차하는 리투아니아의 교통 요충지 마리얌폴레.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발트 3국과 다른 나토 국가들을 잇는 도로와,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민스크를 잇는 도로가 교차하는 리투아니아의 교통 요충지 마리얌폴레.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결과는 나토 측의 무참한 패배였다. 러시아가 자국민 보호를 위한 ‘인도적 개입’이라며 리투아니아 부분 점령을 포장하자, 미국은 개입을 꺼렸고 독일은 나토 내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는 3일 만에, 불과 1만5000명 병력으로 리투아니아의 핵심적 교통 요충지인 마리얌폴레를 점령했다.

마리얌폴레는 동쪽의 친(親)러 국가인 벨라루스와 서쪽의 칼리닌그라드를 가로로 연결하는 회랑의 중심 도시일뿐 아니라, 폴란드와 연결된 비아 발티카(Via Baltica) 도로가 지난다. 발트 3국에게는 ‘생명선’과도 같은 도로다. 마리얌폴레가 러시아 수중에 넘어가면서, EU 국가들과 폴란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을 연결하는 수바우키 회랑(Suwalki Gap)도 사실상 차단됐다.

리투아니아와 접한 벨라루스에서 자파트 군사훈련을 전개한 러시아군/자료 사진
리투아니아와 접한 벨라루스에서 자파트 군사훈련을 전개한 러시아군/자료 사진

독일은 나토군의 일원으로 제45기갑여단을 리투아니아에 배치하고 있다. 독일 국방장관은 2029년까지 러시아의 공격에 완전한 대비 태세를 갖추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번 워게임에서 독일 여단은 리투아니아의 주둔 기지도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된 것일까.

◇우크라 휴전 이후, 발트 3국으로 눈 돌린 러시아

러시아는 5월 우크라이나 휴전과 동시에, 투자와 값싼 가스를 제의하며 독일과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 동시에 벨라루스와 칼리닌그라드에서는 병력 배치와 군사훈련을 통해 발트 3국에 대한 긴장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10월 벨라루스와 함께 하는 대규모 군사훈련 ‘자파트(Zapad)’을 마친 러시아군 1만2000명은 약속과 달리, 벨라루스 서부에서 철수를 미룬다. 그 새, 러시아 특수부대원들은 리투아니아에 온갖 안보 불안 사태를 초래한다. 리투아니아는 결국 벨라루스와의 국경을 폐쇄한다.

◇’인도주의적 위기’ 구실로 러시아군, 나토 영역 진입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와의 조약에 따라, 칼리닌그라드~벨라루스 간 도로를 러시아 측에 개방해야 한다. 현재도 수많은 러시아 트럭들이 이 도로를 따라 리투아니아를 가로지른다. 국경이 막히자, 러시아는 물자 공급이 끊긴 칼리닌그라드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했다며 도로 확보를 구실로 칼리닌그라드의 러시아 병력 1만5000명을 마리얌폴레로 보낸다.

독일 '디 벨트'는 러시아가 '인도주의적 제한된 임무'라는 구실로 나토 분열을 이용해, 얼마나 쉽게 나토회원국 리투아니아의 교통 요충지를 장악할 수 있는지 워게임을 통해 보여줬다./자료 사진
독일 '디 벨트'는 러시아가 '인도주의적 제한된 임무'라는 구실로 나토 분열을 이용해, 얼마나 쉽게 나토회원국 리투아니아의 교통 요충지를 장악할 수 있는지 워게임을 통해 보여줬다./자료 사진

그러나 미국은 ‘인도적’ 성격이라는 이유로,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이를 ‘집단 방위’ 차원에서 자동 개입하도록 한 나토 헌장 제5조를 발동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리투아니아의 독일 기갑여단의 전차들은 러시아군 드론이 미리 대량 살포한 지뢰 때문에 발이 묶였다.

러시아는 이 작전이 “제한적인 인도주의적 임무”라며, 민간인 피해가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100~150명 규모의 미 감시단을 파견하라는 제안까지 한다. 미국은 이를 거절했고, 이는 워게임의 모스크바 진영에는 “미국이 개입 의사가 없다”는 신호로 읽혔다. 미국의 단호한 지도력이 결여된 나토에서, 독일은 ‘확전’을 우려해 초기 단계에선 직접적인 군사 행동을 피한다.

◇러시아의 ‘확전’ 위협에, 서방은 늘 ‘긴장 완화’ 사고로 대응

디 벨트는 “워게임이 진행되면서, 한 가지가 분명해진 것은 일단 군사적 상황이 기정사실화되면 이를 되돌리는 데 드는 비용과 위험은 극도로 커지고, 확전의 부담은 방어하는 측에 전가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독일연방군 장교 양성 대학인 헬무트-슈미트대에서 전개된 워게임에서, 독일 정부를 맡은 블루 팀 멤버들이 러시아 측 의도와 계획을 추측하며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Die Welt
독일연방군 장교 양성 대학인 헬무트-슈미트대에서 전개된 워게임에서, 독일 정부를 맡은 블루 팀 멤버들이 러시아 측 의도와 계획을 추측하며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Die Welt

이번 워게임에서 폴란드 총리 역할을 맡았던 한 폴란드 분석가는 “러시아가 확전(擴戰)을 위협하기만 하면, 우리[나토]는 이미 ‘먼저 긴장을 낮춰야 한다’는 사고 방식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내내 지원하는 무기의 공격력을 강화하려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발목을 잡은 마인드이기도 했다.

워게임에서 러시아군 총참모장 역할을 맡았던 오스트리아의 군사분석가 프란츠-슈테판 가디는 디벨트에 “억지력은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적이 우리 의지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문제다. 이번 게임에서 우리 ‘러시아 동료들’은 독일이 주저하리라는 걸 분명히 알았고, 그것만으로도 승리하기엔 충분했다”고 말했다.

◇별도의 심판 두고, 각본 없이 진행된 워게임

워게임은 사실 1820년대 독일 프로이센이 처음 개발했다. 이번 워게임은 양측의 고위 결정권자ㆍ군지휘관 등을 맡은 플레이어들이 서로 분리된 방에서 조율자에게 번갈아 팀의 결정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동시에 지시가 떨어졌다. 이 지시의 이행 여부는 사전에 정한 엄격한 규칙과 심판진에 의해 결정됐다. 예를 들어,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에 러시아군이 지뢰를 매설한 뒤, 폴란드군이 국경을 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랐다.

러시아 팀은 시작부터 ‘나토 분열’을 목표로 12쪽 짜리 잠재적 작전 시나리오를 매우 명확하고 상세하게 작성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알렉산드르 가브예프 카네기 러시아ㆍ유라시아 센터 소장은 러시아 독립매체 메두자(Meduza)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연막(煙幕)을 피우며 신속하게 행동했고, 독일과 나토 팀은 완전히 허를 찔렸다. 그런 시나리오는 준비조차 못했고 나토 소집에만 수일 걸렸다”고 말했다. 3일간 게임 진행 후, 심판진은 레드 팀(러시아) 승리를 선언했다.

◇”러시아를 과대평가 말아야” 비판도

물론 이 워게임 결과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리투아니아 국방참모총장은 “현실에서는 러시아군 동향에 대해 충분한 정보 경보(警報)가 있다”며 “평시 1만7000명, 즉각 동원병력 5만8000명인 리투아니아군만으로도 마리얌폴레에 대한 위협은 대응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나토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2029년 이전에는 나토를 공격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러시아 위협을 지나치게 임박한 것으로 보는 것은 나토의 전반적인 군사계획을 실행하는 데에도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금까지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한달 평균 전사자 3만 명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은 “푸틴은 거의 모든 목표에서 실패했다. 우크라이나에서조차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 역량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휴전만 이뤄지면 숙련된 병력 20만 명을 다른 전선에 투입할 수 있다. 워게임에 참가했던 한 군사 전문가는 “푸틴은 기회가 보이면 테스트해보고, 가능성이 커지면 확대한다. 유럽이 준비될 때까지 왜 기다리겠느냐”고 말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