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빠진다"… '美 보수 최대 스피커' 터커 칼슨, 공화당 지지 35년 만에 철회

이란戰 수렁 빠진 MAGA 연합
트럼프 결속력 한계 노출
美 보수, 차기 대권 정통성 경쟁 점화

35년간 미국 공화당을 지지해 온 보수 진영 최대 논객이 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란전 합의 이후 트럼프 한 사람을 구심점으로 묶여 있던 보수 연합에서 균열이 표면으로 나타나면서, 당에서 영향력이 큰 인사까지 밀어내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22일(현지시각) 미국 정치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폭스뉴스 간판 진행자 출신인 터커 칼슨은 18일 공개된 팟캐스트 ‘캔트 비 센서드(Can’t Be Censored)’에서 “나는 빠진다(I’m out)”며 “공화당을 지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칼슨은 공화당이 미국보다 이스라엘의 안보를 앞세워 유권자를 배신했다고 주장하며 “자국민 이익보다 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당을 미국 유권자가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이 발언은 18일 방송됐지만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퍼지며 주목받았다.

칼슨은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로 통한다. 폭스뉴스에서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2023년 해고된 뒤 독립 매체 ‘터커 칼슨 네트워크’와 엑스(X)를 기반으로 활동해 왔다. 3월 기준 그의 엑스 팔로어는 1740만 명으로 주요 보수 논객 가운데 가장 많다. 지난해 9월 총격으로 숨진 청년 보수 운동가 찰리 커크가 대학 조직과 선거 운동망을 거느린 조직가였다면, 칼슨은 여론과 의제를 움직이는 미디어 권력에 가깝다.

2024년 10월 31일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터커 칼슨 라이브 투어에서 칼슨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10월 31일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터커 칼슨 라이브 투어에서 칼슨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칼슨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는 오래전 어긋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19년 트럼프 1기 시절만 해도 긴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군 무인기를 격추하자 보복 공격을 검토했다. 하지만 칼슨이 전쟁을 벌이면 재선이 위험해진다고 만류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을 취소했다. 2024년 대선에서 칼슨은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과 유세 지원으로 트럼프 복귀를 도왔다.

균열은 지난해 6월 미국의 이란 군사 개입 가능성을 두고 칼슨이 공개 반대하면서 시작됐다. 결정적 파국은 올해 2월 28일 미국이 이란에 대규모 군사 작전을 개시한 순간이었다. 칼슨이 이를 “역겹고 사악한 일”이라고 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3월 초 칼슨을 두고 “길을 잃었다”며 밀어냈다. 곧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칼슨과 캔디스 오언스, 메건 켈리 등 우파 대표 논객을 한꺼번에 거명하며 “더 이상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아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이로부터 두 달 뒤 칼슨은 당 전체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였다.

마가는 본래 이스라엘 입김에서 벗어나 해외 전쟁을 줄이자는 비개입주의(미국 우선주의) 세력과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압박하자는 친이스라엘 매파, 트럼프 개인 충성층이 한 데 모인 정치세력이다. 그러나 이란전이 벌어지자 칼슨을 비롯한 비개입주의자들이 이탈했다. 여기에 최근 맺어진 종전 합의는 미국에 ‘굴욕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친이스라엘 매파를 자극했다. 벤 샤피로, 마크 레빈 등 매파와 빌 캐시디·로저 위커 상원의원 등 친이스라엘 매파는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도 이란에 제재 완화와 동결 자금 해제를 허용했다며 반발했다. 칼슨은 전쟁을 시작했다고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고, 매파는 전쟁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고 양쪽에서 공격하는 구조다.

미국 정치 전문 기자이자 칼슨 전기를 쓴 제이슨 젠걸은 22일 뉴요커에 칼슨의 행보를 진정성과 정치적 계산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풀이했다. 그는 칼슨이 트럼프의 개전에 실제로 배신감을 느끼는 동시에, 전쟁에 실망할 보수층을 선점해 “원래의 보수 신념을 지킨 인물”이라는 서사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2028년 칼슨 본인이 직접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이전보다 커졌다고 봤다.

칼슨이 공화당 지지를 철회했다고 곧바로 공화당 유권자가 대규모로 이탈할 가능성은 낮다. 올해 3~4월 이코노미스트·유고브 조사에서 마가 성향 공화당원 83%는 이란전을 지지했다. 지난달 기준 공화당원 가운데 3분의 2에 가까운 62%가 본인을 마가로 규정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주요 마가 인사 일부가 이탈했어도 유권자 다수는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란전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차기 공화당 대선 주자이자 트럼프 후계자로 여겨지는 JD 밴스 부통령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밴스 부통령은 칼슨처럼 그동안 비개입주의를 대변해 왔지만, 행정부 주요 요인으로 이란전 개전을 막지 못했다. 여기에 종전 협상에 핵심 당사자로 참여하면서, 반전파에는 전쟁을 막지 못한 사람으로 매파에는 이란에 양보한 합의를 주도한 사람으로 비쳐지고 있다. 악시오스는 전문가를 인용해 “이번 합의의 후유증이 2028년 후계 구도에서 거론되는 밴스 부통령에게 집중될 수 있다”고 전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