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한국, 완전 붕괴 가능… 美와 좋게 못지낼 이유 없어"
李정부 유화책에 "기만극" 비난
"동족에서 완전히 배제" 핵 위협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9차 대회 사업총화보고에서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6일 전했다. 김정은은 지난 20∼21일 보고에서 “한국의 현 집권 정권이 겉으로 표방하는 유화적인 태도는 서투른 기만극이고 졸작”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그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대북 방송 중단, 9·19 남북 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 등을 추진해 왔다. 최근에는 한미 연합 훈련 축소를 요구하며 미국과도 대립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며 “핵 보유국의 문전에서 실행되는 한국의 부잡스러운 행동이 우리의 안전 환경을 해치는 행위로 인정되는 경우 우리는 임의의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고 했다. “그 행동의 연장선에서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고도 했다. ‘대남 핵 공격’을 위협한 것이다.
그런 한편 김정은은 “미국이 북한 헌법에 명기된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한 헌법에 명시된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면 대미 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뜻으로, 앞으로 5년을 결정하는 당 대회에서 ‘통미봉남(通美封南)’보다 더한 ‘통미적남(通美敵南)’ 노선이 제시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발언에 대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평화와 안정”이라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후 당내 기구인 ‘한반도 평화 신(新)전략위원회’를 출범시켰다.
◇美엔 대화 가능성 열어놓고… “한국은 철저한 적대국” 못 박았다
26일 공개된 북한 노동당 제9차 대회 대외분야 사업총화 보고에서 김정은은 당이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간 관계로 정립하는 최종적인 중대 결단”을 내렸으며 이는 “불변한 원칙적 입장”이라고 했다. 2023년 말 제시한 남북 적대적 두 국가론이 일시적 대남 전술이 아니라 “결론적 강령”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김정은은 “한국에 대한 고려 사항이 백지화된 지금 우리의 군사적 대응 기준은 본질적으로 달라졌으며, 선제 공격을 포함해 적대국에 해당되는 모든 물리력의 사용은 이론·기술적으로 완전하게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핵무기 사용에 윤리적 모순과 제약이 따랐는데, ‘적대국화’를 통해 한국을 핵을 사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여당은 남북 긴장 완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북한이 남측에 대해 적대적 언사로 불신을 표하고 있고 이에 대해 저자세로 대응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한 술 밥에 배부르랴’라는 옛 말이 있다. 남북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오래 쌓인 적대 감정을 없애야 하는데, 이는 일순간에 한 가지 획기적 조치로는 이룰 수 없다”고 했다. 통일부도 “북한의 태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의 ‘한반도 평화 신(新)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평화가 주식이고 평화가 주가지수”라며 한미 연합 훈련과 관련해 “한반도의 전쟁 억제와 한반도 평화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수준에서 한미 간 잘 조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유엔군사령관의 승인 없이 우리가 자주적으로 비무장지대(DMZ)에 출입할 수 있도록 DMZ법도 함께 고민하고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9·19 군사합의 복원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사령관이 겸임하는 유엔군사령관의 DMZ 출입 승인 권한을 우리 정부가 나눠 갖는 DMZ법이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보고 있으며, 군사분계선(MDL) 일대 작전을 제한하는 9·19 군사합의 복원에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요청한 한미 연합 실기동 훈련 취소나 축소에도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북한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이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김정은은 당 대회에서 역대 한국 정권이 “음흉하게도 화해와 협력의 기회를 통해 우리 내부에 저들의 문화를 유포시키면서 우리 체제의 붕괴를 기도해 왔다”며 “한국과의 연계 조건이 완전히 소거된 현 상태를 영구화”하겠다고 했다. 한류 유입이 정권 유지에 치명적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단기간에 남북 대화·교류를 재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석좌교수는 “후계 체제 등을 염두에 두고 독자적인 국가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만 조건부 대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김정은은 북한이 핵 보유국이란 사실은 “완전히 불가역적인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미국과의 대결에 만반으로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헌법에 명기된 북한의 지위’를 존중하면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했다. 북한은 2012년 개정 헌법 서문에 ‘핵 보유국 지위’를, 2023년 헌법 본문에 ‘핵무력의 질량적 고도화’ 원칙을 적시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란 현재의 목표를 포기한다면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25일(현지 시각) “우리와 공유할 정보나 관점이 있는 어느 정부의 당국자와도 대화할 준비가 항상 돼 있다”며 “쿠바의 누군가이든, 잠재적인 어느 날 북한의 누군가이든, 또는 현재 이란의 누군가이든 우리는 항상 듣는 것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 쿠바와 관련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고 루비오 장관이 “이는 분명히 협상과는 다르다”고 했기 때문에 당장 미북 대화 가능성을 시사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3월 말~4월 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 등을 계기로 미북 대화가 재개될 여지는 있다.
한편 지난 19일 개막한 북한 노동당 제9차 대회는 25일 당 대회 결정서 채택과 김정은의 폐회사를 끝으로 종료됐다. 남북 적대적 두 국가론이 이번 당 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 반영됐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에서 노동당 규약은 헌법보다 상위에 있다. 앞으로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통해 적대적 두 국가 입장을 구체화하기 위한 헌법 영토 조항 제정 등을 추가로 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