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놓고 무너지는 80년 대서양 동맹

트럼프, 그린란드와 군사 훈련한 나토 8國에 10% 추가 관세
해당국들 "동맹 훼손" 성명… EU, 미군 지원 중단 등 보복 논의

지난 17일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주민들이 그린란드 국기와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수도 누크에 있는 미국 영사관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그린란드를 미국으로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내자 이에 반발한 그린란드 주민들의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그린란드 합동 군사훈련에 참여한 나토 동맹국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 계획까지 밝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지난 17일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 주민들이 그린란드 국기와 ‘그린란드는 판매용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수도 누크에 있는 미국 영사관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그린란드를 미국으로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내자 이에 반발한 그린란드 주민들의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그린란드 합동 군사훈련에 참여한 나토 동맹국에 대한 징벌적 관세 부과 계획까지 밝혔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합동 군사훈련에 참여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에 관세 폭탄을 예고하고, 유럽이 반발해 정부 공동 성명까지 내면서 ‘대서양 동맹’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유럽 일각에선 “역내 미군 기지를 폐쇄할 수 있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0년 가까이 서방 민주·자유 진영을 지탱하는 근간이었던 최대 군사·가치 동맹이 회원국 간 ‘영토 싸움’으로 붕괴 위기까지 몰린 것이다.

트럼프는 1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을 대상으로 내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 25%의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 관세는 그린란드의 완전하고 총체적인 매입(purchase)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고 했다. 앞서 나토 회원국인 이들 8국은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야욕을 ‘실체적 안보 위협’으로 판단하고 그린란드 합동 군사 훈련 ‘북극 인내 작전’에 자국군을 파견했는데, 트럼프가 이에 대한 보복 조치에 나선 것이다. 그러자 트럼프의 발표 하루 뒤인 18일 8국은 공동성명을 내고 트럼프의 관세 조치에 대해 “위험한 소용돌이를 초래해 대서양 관계를 훼손한다”고 비판하고 “덴마크 및 그린란드 주민들과 전적으로 연대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부과를 공언한 관세는 지난해 무역협정을 통해 확정된 관세(영국 10%, 유럽연합 15%)에 추가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는 이날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를 원하고 있고, 덴마크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안보를 위해 미국이 그린란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거듭 펼쳤다. 또한 그린란드가 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어망인 ‘골든돔’에 필수적이라며 “이 땅(그린란드)이 포함될 때만 최대 잠재력과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난 관세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트루스 소셜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관세왕(The Tariff King)’이라는 글자를 올렸다. /트루스 소셜
트럼프 “난 관세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 트루스 소셜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관세왕(The Tariff King)’이라는 글자를 올렸다. /트루스 소셜

 

◇ 나토 회원국간 영토 싸움… 유럽 “미군기지 다 폐쇄” 주장도

미국의 관세 위협은 유럽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관세 위협을 용납할 수 없고 지금 상황에 맞지도 않는다”며 “유럽인들은 단합해 조율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완전히 잘못된 일”이라고 했고,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우리는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각자 입장을 내던 유럽 정상들은 정부 공동성명으로 연대했다. 독일에선 2026 북중미 월드컵 참가 거부까지 거론되고 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이날 트럼프의 관세 방침이 미·유럽연합(EU) 무역 협정에 위배된다며 EU 집행위원회에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발동하라고 요구했다. ‘무역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 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랑게는 “국가 주권은 모든 무역 협정 상대로부터 존중받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산 무기 구매 중단도 거론된다. 2024년 유럽은 미국에서 760억달러(약 112조1380억원)어치 무기를 샀는데, 이는 전 세계 미국 무기 구매 총액의 절반이 넘는다.

더 극단적인 조치도 언급되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이날 유럽 정가에서 미국 유럽사령부에 대한 지원 중단, 역내 미군이 주둔 중인 기지 폐쇄 또는 통제권 회수 등의 제안까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유럽 전역에 31곳 상설 기지와 19곳 군사 시설에 미군 6만7500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주영 미군은 최근 북대서양에서 러시아의 ‘그림자 함대’ 선박을 나포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해 6월 미국의 이란 공습 때도 유럽 국가들의 측면 지원이 있었고, 독일·이탈리아에 전개된 미군은 러시아·중동·아프리카 전략의 중추 전력이다. 벤 호지스 전 미국 유럽사령관은 “독일에 있는 람슈타인 공군 기지는 중동·아프리카 작전의 핵심”이라며 “유럽 기지 포기는 미군에 ‘재앙’과 같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유럽 전역의 미군 기지가 폐쇄된다면, 미군은 정보 자산의 절반가량을 상실하는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도 관측된다.

독일, 그린란드에 병력 파견  16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 국제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독일 연방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편입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무력 사용 가능성도 시사하자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강력 반발하고 연대에 나서면서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독일, 그린란드에 병력 파견 16일 그린란드 수도 누크 국제공항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독일 연방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내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편입에 대한 의지를 밝히며 무력 사용 가능성도 시사하자 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강력 반발하고 연대에 나서면서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실제 유럽 각국이 이 같은 조치를 취한다면 미군이 유럽에서 철수해 나토 체제가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먼저 동맹국 영토를 탐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 철수 논의도 더는 성역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한 나토 당국자는 “미군 기지를 협상 카드로 쓰면 유럽은 안보 보장을, 미국은 가장 가치 있는 전방 작전 기지를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EU의 한 관계자는 서방 안보의 핵심 고리인 유럽 주둔 미군의 존폐 여부까지 거론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대서양 동맹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파열음이 커지면서 대서양 양안에선 “적전 분열은 곧 자멸”이라며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일제히 터져 나왔다. 에스토니아 총리를 지낸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는 “중국과 러시아는 지금쯤 신이 났을 것”이라며 “대서양 동맹 간 분열을 통해 이득을 보는 건 바로 그들”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의 내부 다툼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에 집중해야 할 역량을 소모해선 안 된다”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위험한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푸틴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토머스 틸리스 미 공화당 상원의원은 “나토 분열을 바라는 푸틴, 시진핑을 비롯한 적대 세력에 호재”라고 했다. 같은 당 돈 베이컨 하원의원도 “나토 동맹국을 위협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고, 무소속 버니 샌더스 의원은 “가장 가까운 동맹을 파괴하는 미친 짓”이라고 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