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갈이' 재미붙인 트럼프 "태평양·대서양 이름 바꿀 수도"

3줄 요약
트럼프, 미국 우선주의 알리고 이전 정부 차별화
멕시코만·데날리산·국방부 등 주요 명칭 변경
케네디 센터와 공항·도로에도 본인 이름 부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백악관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 온타리오호의 이름을 ‘아메리카호’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큰 사진). 작은 사진은 아메리카호(Lake America) 명칭을 반영한 오대호의 지도. /로이터·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백악관에서 미국과 캐나다 사이 온타리오호의 이름을 ‘아메리카호’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큰 사진). 작은 사진은 아메리카호(Lake America) 명칭을 반영한 오대호의 지도. /로이터·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 미국 뉴욕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사이의 호수 온타리오호의 이름을 ‘아메리카호’로 변경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캐나다와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 전쟁을 벌이며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호수 이름을 바꾸겠다고 소셜미디어에 알린 지 이틀 만에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지난해 2기 임기 시작 직후 동남부에 면한 멕시코만의 이름을 일방적으로 ‘아메리카만’으로 바꾸면서 해역을 공유하는 멕시코의 반발을 샀는데, 이번에는 캐나다를 상대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명뿐 아니라 공공기관과 정부 부처도 트럼프 2기 이후 이름이 바뀌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뉴욕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으로 ‘브랜딩’을 중시하는 트럼프가 쉽게 자신이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 색깔을 쉽게 부각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이름 바꾸기를 선호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캐나다 관리들은 우리를 매우 나쁘게 대우했고, 그들은 못된 사람들”이라며 “우리에겐 이제 바다가 필요하고, 대서양이나 태평양 이름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 서명 후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원주민 부족어 웬다트어에서 유래한 ‘온타리오’는 아름답고 크다는 의미로 캐나다 연방 설립과 미국 독립선언보다 모두 앞선다”며 “미국은 무역 관계, 외교정책뿐 아니라 국가 기념물과 수역 이름까지 바꾸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2기 들어 진행된 이름 바꾸기 사례를 직격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1월 20일 2기 임기 첫날 ‘미국의 위대함을 기리는 명칭의 복원’이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지명 바꾸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고,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원주민 요청을 받아들여 개명한 북미 최고봉(6190m) 알래스카주 데날리산을 이전 이름인 매킨리산으로 환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데날리’ 는 원주민어로 높다는 뜻이고, 매킨리는 미국의 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를 말한다. 트럼프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개명하는 이유에 대해 이 해역의 풍부한 석유·가스·수산물 자원을 언급하며 “미국의 미래에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날리산을 매킨리산으로 환원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산업을 발전시켰음에도 비극적으로 암살된 매킨리 대통령의 이름을 삭제한 것은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오바마를 비난했다. 이름 바꾸기가 트럼프가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와 맞닿았음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는 일방적 이름 바꾸기에 반발한 멕시코의 항의를 묵살하고, ‘멕시코만’ 표기를 고수하는 AP통신 기자의 백악관 출입을 금지하는 등 논란 속에서도 개명 작업을 밀어붙였다. 지난해 9월에는 국무부·재무부와 함께 연방정부에서 강력한 3대 부서로 꼽히는 국방부의 이름을 1789년부터 1947년까지 사용하던 옛 명칭인 전쟁부로 바꿨다. 미국의 세계 초강대국 도약의 계기가 된 세계대전 승전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트럼프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는 자신의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개명에도 공을 들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해 1971년 건립된 워싱턴DC의 공공 예술 공연장 ‘케네디 센터’의 간판이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재집권 후 이사진을 측근으로 대거 교체한 뒤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같은 시기 1984년 미 의회가 설립한 독립 비영리 기관인 미국평화연구소(USIP)는 ‘도널드 J.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제2의 백악관’으로 불리는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어 트럼프의 정치적 연고지로 꼽히는 플로리다에서도 주요 시설물에 트럼프 이름이 붙었다. 올해 1월에는 마러라고 리조트와 가까운 플로리다 팜비치의 도로가 ‘트럼프 대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난 7월에는 팜비치 국제공항이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 국제공항’으로 간판을 바꿨다. 워싱턴 DC(로널드 레이건)와 휴스턴(조지 HW 부시), 아칸소주 리틀록(빌 클린턴·힐러리 클린턴 부부) 공항 등이 역대 대통령 이름을 쓰고 있지만, 모두 퇴임 뒤 개칭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사례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포진한 지역 의회가 나서 지명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름을 상품의 가치, 이미지를 결정하는 도구로 보는 트럼프의 세계관이 이름 바꾸기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즉흥적으로 이뤄진 이름 바꾸기로 인한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우선 ‘아메리카만’이나 ‘’아메리카호' 등 트럼프가 바꾼 지명은 국제법적 효력이 없는 ‘국내용 조치’에 불과하다.

구글은 지난해 1월 멕시코만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꾼 트럼프 행정부의 변경 내용을 구글 맵에 반영했다. 그러나 접속 위치에 따라 표기가 다르다. 멕시코에서는 여전히 멕시코만으로 표기되고, 제3국에서는 아메리카만과 멕시코만이 둘 다 병기되는 식이다. 트럼프의 등쌀에 임시방편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케네디 센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려 한 조치는 더욱 큰 논란을 낳았다. 센터 측은 외벽 이름에도 ‘트럼프’ 이름을 새기는 공사까지 진행됐지만, 이후 법원이 이사회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 판단해 제동을 걸면서 이를 다시 되돌리는 철거 공사로 이어졌다. 케네디 센터에 대한 무리한 장악 시도는 이곳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던 유명 예술가들의 연쇄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케네디 센터의 티켓 판매와 기부금이 크게 줄었고, 현재 상당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의욕적으로 옛 이름 ‘전쟁부’로 환원한 국방부도 의회 승인을 거치지 못한 상황이라 공식적으로는 보조 명칭에 그치고 있다. 전쟁부로 개칭하자는 여론에 부정적인 공화당 의원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의회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상당수 주류 언론도 보도에 국방부란 기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조선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