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하메네이 살해되자, 푸틴이 주변의 CCTV 시스템 급히 끈 이유
AI 발달로, 해킹한 수백만 시간 영상 데이터에서 '언어 기반' 검색 결과를 금세 도출
"하루에 세 번 옷 갈아 입은 사람" "짧은 시간에 한 장소를 자꾸 찾는 차량" 등
지금까지 물체로 보던 것을, 행동으로 보게 돼
독재 정부의 감시 시스템이 상대국에겐 정보 빼내는 '열쇠구멍' 될 수 있어
지난 2월28일 이스라엘과 미군의 폭격으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즉사했을 때, 러시아 안보 기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최측근들을 보호하려고 설치한 특별 감시 시스템의 일부를 즉시 폐쇄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8일 보도했다.
이 감시 시스템은 모스크바 시민 감시용인 30만 대의 카메라 네트워크와는 별개의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부터 확실히 차단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시스템 전체를 샅샅이 점검한 뒤에야 다시 가동됐다.
사실 보안 카메라에 숙련된 해커나 이스라엘의 엘리트 신호정보(SIGINT) 정보기관 같은 곳들이 적국(敵國)의 CCTV 카메라 시스템에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었다.
심지어 이란도 이스라엘의 CCTV 영상 데이터를 해킹할 수 있었고,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CCTV 시스템에 침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수백만 시간 분량의 영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소화’해, 원하는 정보를 빼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AI(인공지능)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방대한 영상 데이터 속에서 매우 짧은 시간에 특정 행동과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이 가능해졌다. FT는 “알리 하메네이 암살은 막 등장한 기술적 도약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평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은 지난달 26일 지역 보안 책임자들에게 러시아의 방대한 감시 체계가 오히려 취약점이 되고 있다며, “이란 고위 관리들의 위치는 부분적으로 테헤란의 영상감시 시스템 소프트웨어에 숨겨진 ‘백도어’로 식별됐다”고 말했다. 독재 정부가 자국민을 감시하려고 만든 도구가 적국들이 악용할 수 있는 약점이 됐다.
이스라엘 정보요원들은 AI 기술 발전을 활용해 테헤란의 복잡한 지형 구조를 파악하고, 고위 관리 경호원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며, 수천 대의 카메라가 촬영한 수백만 시간의 영상 속에서 타깃을 효율적으로 분리해냈다. 이렇게 취합한 정보는 현장에서 수집된 인적 정보(HUMINT)와 결합됐다.
◇단지 얼굴ㆍ차량 식별 넘어, 언어 기반의 무한 검색
FT는 “AI의 영상 분석 능력은 2023년 무렵 훨씬 강력해졌고 1년 전에 또 한 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얼굴 인식ㆍ총기 탐지ㆍ차량 번호판 추적 등 기존의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알고리즘보다 수십~수백 배 이상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기존 도구들은 수십 개의 미리 설정한 검색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AI 도구는 “두 사람이 가방을 건네는 장면” “하루에 여러 번 옷을 갈아 입은 사람” “최근 재(再)도색된 차량” “짧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지나간 차량” 등과 같이 언어 기반 검색을 영상 데이터에 적용해 사실상 무한 탐색을 할 수 있다.
유럽의 한 정부 관계자는 FT에 “이는 감시 기술의 결정판(Holy Grail)”이라며 “우리는 이제 물체가 아니라 행동을 찾을 수 있게 됐고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렸다”고 말했다.
적국이 수십억 달러를 들여 주요 보안시설과 대도시에 설치한 교통 카메라와 같은 CCTV 시스템이, 상대 정보기관이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패턴과 비밀을 빼내는 ‘열쇠구멍(keyhole)’으로 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보기관은 일단 특정 인물이 식별되면, AI를 통해 수개월 간 그의 활동기록, 그가 만난 사람들의 생활 패턴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습득된 영상 정보는 소셜미디어, 해킹된 통신 기록, 해킹한 스마트폰 마이크가 수집한 음성 정보, 여행 기록 등과 함께 분석된다.
이스라엘의 한 정보분석 기업은 FT에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컴퓨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인간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됐다”며 “수천 시간, 수천 개의 영상 데이터 속에서 원하는 바로 그 순간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정말 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AI 적용한 첨단 감시 구축해도, 들여다볼 방법은 늘 존재”
FT는 “한 국가의 감시 시스템이 적국에 이처럼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역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 세계 방첩 관계자들에겐 충격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시 네트워크가 오랜 기간 수 세대 장비가 복잡하게 뒤섞여 구축된 탓에, 카메라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러시아의 교통카메라 시스템에 침투한 터라, 이미 푸틴의 신변 안전에 대해 큰 우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예방 조치에도, 우크라이나의 한 독립적인 해커는 FT에 “모스크바의 카메라들, 크렘린궁 주변 카메라들조차 여전히 정기적으로 해킹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도 자국 내 감시 체계를 강화하면서, 영상 장면을 해석하고 행동 패턴을 식별하며, 문자 입력만으로 영상을 검색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AI 카메라와 소프트웨어에 대규모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경쟁국들이 중국 내부를 더 효율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ㆍ영국ㆍ캐나다 등의 정보 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한 관계자는 “중국인들이 카메라를 설치하면, 우리가 할 일은 그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FT에 말했다.
이란 정부는 2025년 12월 이란 내 시위가 격렬해지자, 감시용 카메라를 확대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이를 실시간으로 해킹했고, 이란 정권을 떠받치는 민간 군사조직인 바시즈 대원들에 대한 정보를 확보했다.
지난 3월 전쟁 중에, 바시즈 대원들은 더 이상 위장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을 식별할 수 있었다. 차량용 블랙박스ㆍ교통 카메라ㆍ차량 등록번호, 드론이 수집한 바시즈의 검문소 변경 패턴 등에서 생성된 실시간 데이터를 분석한 덕분이었다.
워싱턴 DC의 정보분석 기업 아이리스(Airis)는 지난 1년 사이에도 AI 덕분에 각종 영상과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드는 시간이 ‘며칠’에서 불과 ‘몇 분’으로 단축됐다고 한다. 이 기업은 “밤에 큰 나일론 가방을 운반하는 사람” “특정 배치나 문신을 한 무장 대원”과 같은 언어 검색으로, 마약 밀매업자와 마약 카르텔 조직원의 행동 패턴과 일치하는 자들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판매한다.
그러나 첨단 AI 기술이 적용된 감시를 피하는 방법도 여전히 존재한다. 헤즈볼라나 하마스 같은 무장 테러집단은 손으로 쓴 종이로 메시지를 전하고, 구식 아날로그 전화선 같은 낮은 기술 수단을 사용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최첨단 감청ㆍ감시ㆍ정찰 시스템은 2023년 10월7일 대규모 테러를 설계한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야히야 신와르를 끝내 찾지 못했다.
이스라엘과 동맹국들은 가자의 군중 속에서 키가 크고 마른 신와르 특유의 긴 보폭을 찾아내기 위한 ‘보행 분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돌렸다.
그러나 이스라엘 병사들은 2024년 10월 신와르를 우연히 마주쳤고 교전 끝에 살해했다. 그의 최후 모습은 드론이 촬영했지만, 드론은 그가 누군지 식별하지 못했다. 신와르는 고글을 쓰고, 목도리를 단단히 감아 특유의 귀 모양을 가리고 있었다./조선국제